“영화 꼭 보라고 감독 힘 내라고 상 만들었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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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06면

상(賞)으로 잡음 많은 영화계라지만 반가운 상이 생겼다. 이름하여 ‘들꽃영화상’. 순제작비 10억원 미만의 한국 독립영화만을 대상으로 주는데, ‘종류도 다양하고, 척박한 상황에서 스스로 자란다는 점이 똑 닮은’ 독립영화를 들꽃에 빗대 지은 이름이다. 4월 1일 서울 남산 문화예술산업융합센터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선 최우수작품상·감독상·남녀배우상·촬영상 등 모두 9개 부문에 걸쳐 상을 준다. 작품상 후보에 ‘가시꽃’‘러시안소설’‘명왕성’‘사이비’‘잉투기’‘잠 못 드는 밤’‘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 2’ 등 7편이 올랐다.

한국 독립영화 위해 ‘들꽃영화상’ 만든 달시 파켓

이 상을 만들고 집행위원장을 맡은 이는 다름 아닌 미국인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42)이다. 놀랍다가도 놀랍지 않은 것이, 푸른 눈의 외국인이 나섰다는 표면적 의외성은 존재하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금세 수긍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한국인보다 한국 영화를 더 많이 보고, 아는 영화 평론가’다. 1주일에 3~4편, 1년에 200여 편의 영화를 보는데 대부분이 한국 영화다. 지금껏 영문으로 번역하거나 감수한 한국 영화만도 150편이 넘는다.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은 리스트에는 ‘하녀’(1960)부터 단편영화 ‘잘 돼가? 무엇이든’(2004)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그러면서도 한국 영화계의 단점으로 두텁지 못한 시나리오 작가 군단과 대형 투자사에 의존하는 펀딩 구조 등을 지적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17일 들꽃영화상을 소개하는 기자 간담회에서도 그는 한국 영화에 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피력했다. “미국에는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 영국은 브리티시 인디펜던트 필름 어워즈 같은 독립영화상이 있는데 한국은 독립영화축제는 있지만 시상식이 중심인 행사는 없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과, 영화와 인연을 맺은 건 우연이었다. 인디애나 주립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던 그는 원래 동유럽 문학을 배우러 체코에 갈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학비를 벌기 위해 1997년 한국에 와 대학 영어 강사를 시작했다. 낯선 이국 땅에서 틈나는 대로 찾은 곳은 영화관. 한국 작품들의 역동성과 다양성에 빠져 들었다. 특히 98년 개봉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작품’이다. “두 남녀 주인공이 사진관 소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처럼 장난치는 모습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아요.”

이후 영어권 외국인에게 한국 영화를 알리고 싶어 ‘코리안 필름(Koreanfilm.org)’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큰 뜻 없이 벌인 일이 커져 방문객은 하루 4000명이 넘었다. 영국 영화업계지 ‘스크린 인터내셔널’ 측도 이 사이트를 보고 한국 통신원을 제안했다. 그의 삶은 180도 수정됐다. 본격적으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기 시작해 칼럼니스트로는 물론 해외 영화제 프로그래머, 최근엔 국내 영화 몇 편(‘원 나잇 스탠드’ ‘강철대오’ ‘돈의 맛’)에 조연으로도 활약했다.

한국에 대한 문화적 배경, 언어적 한계를 넘어서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그는 19일 전화 통화에서 “영화니까”라며 짧게 응수했다.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감독이라면, 영화라면 보편적 이해를 만들어 낼 거예요. ‘친절한 금자씨’에서 교도소를 나오는 금자에게 두부를 주는 까닭을 이해하는 외국인은 드물 거예요. 그래도 영화의 메시지가 달라지진 않잖아요.”

그는 이 상을 5년 전부터 기획했다. “해외 프로그래머들을 만나면서 한국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점쳤다”고 했다. 사회적 의미를 깊이 담아내면서도 대중적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이런 작품들을 영화제에서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아쉬워요. 개봉해도 잠깐뿐이잖아요. 사람들이 더 오래 기억하라고, 나중에라도 다시 보라고 상을 만드는 겁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젊은 감독들에게 누군가 지켜 보고 있다고, 힘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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