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무장 ‘운찾사’들 GPS 들고 논밭 수색 … 우주 로또는 하늘의 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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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07면

진주 운석 탐사에 나선 이수영씨가 지난 19일 GPS수신기와 지도로 운석의 궤적을 측정하고 있다.

“개똥 맹키로 널린 게 돌댕인데 우째 찾겠능교.” 이른 아침 부산에서 왔다는 김영교(51)씨가 고개를 내저었다. 세 시간째 언덕바지를 오르내렸지만 빈손이란다. 좀 전에 주운 주먹만 한 화산유리돌에 자석을 대봤지만 반응이 없었다.

경남 진주 오방리 운석마을 가봤더니

 지난 19일 오전 경남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야산. 사흘 전 세 번째 운석 추정 암석이 발견된 밭 근처다. 수백여 명이 찾아왔다는 지난 주말보단 줄었지만 인근 야산과 밭에는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운석을 찾는 탐사객이 눈에 띄었다.

 함께 이곳을 찾은 네이버 ‘사금·광물탐사 동호회’ 운영자 이수영(66)씨가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꺼내 운석 발견 지점의 좌표를 측정했다. 그는 미리 준비한 5000분의 1 지형도에 지점을 표시한 뒤 앞서 운석이 발견된 지점과 직선을 그어 방위각을 쟀다.

 “맞아요. 세 번째 운석 발견 지점을 잘못 찍었었네요. 건너편 밭인 줄 알고 있었어요.”

 범상치 않은 ‘장비’를 갖춘 이씨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운석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묻거나 어깨 너머로 GPS 화면의 숫자를 흘깃대기도 했다.

 금세 10여 명이 몰려들자 이씨는 길가에 세워둔 차로 자리를 옮겼다. 지도를 꺼내 든 그가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1번 운석이 발견된 파프리카 농장과 2번 운석이 발견된 콩밭을 연결하면 방위각이 19도 정도 되죠. 2번과 3번, 즉 우리가 있는 지점을 연결한 선의 방위각은 24도입니다. 두 선의 오차, 즉 5도가량 벌어진 부채꼴 안에 다른 운석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죠.”

 이씨는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운석은 직선 궤적으로 떨어지게 돼 있어요. 처음 세 번째 운석 발견 지점을 잘못 찍어서 부채꼴의 각도가 너무 컸는데, 직접 와보니 훨씬 좁혀진 거예요.”

 지난 10일 이곳에서 3㎞가량 떨어진 대곡면 단목리 파프리카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9㎏짜리 운석이 발견됐다. 이게 억대를 호가한다는 소문에 조용한 시골마을에 ‘운석 러시’가 시작됐다. ‘우주 로또’란 말까지 나왔다.

 함께 탐사에 나선 이씨는 광물 전문가다. 지질학을 전공한 뒤 대한광업진흥공사(현 한국광물자원공사)에서 일했고 해외 유전과 광산 탐사현장에서 평생을 보냈다고 했다. 2년 전 은퇴한 후 소일거리 삼아 희귀 광물과 사금(砂金) 탐사 관련 인터넷 카페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동네 식당엔 몰려든 외지 사람들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밥이 떨어졌다’며 손님을 물리기도 했다. 겨우 자리를 잡은 다른 식당에선 마을 주민들의 운석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다 임자가 정해져 있는 기다. 아무나 찾을 수 있으모 와 횡재겠나. 마 씰데음는 소리 말고 탁배기나 한 잔 더 가 온나.”

 얼굴이 불콰해진 주민 한용권(57)씨는 “그래도 동네가 북적거리니까 잔치 난 것 같아 좋다”며 껄껄 웃었다.

 이씨의 주장대로라면 무거운 운석일수록 가속도가 붙어 남쪽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몰린 기존 운석 발견 지점 대신 가장 큰 운석이 발견된 파프리카 농장 남쪽을 찾아보기로 했다.

 1007번 지방도를 따라 남쪽으로 벌당마을과 정성마을, 신흥마을 주변의 야산과 밭을 뒤지기 시작했다. 진주에 떨어진 운석은 ‘시원운석(미분화운석·Ordinary Chondrite)’. 새카맣고 둥근 모양이다.

 산등성이와 논밭을 헤맨 지 5시간째. 훌쩍 앞서 가던 이씨의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낙하 지점을 좁혔다곤 하지만 운석을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였다.

 “꿈이죠.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희귀한 것을 찾아내는 거니까요. 큰돈이 되면 좋은 거고, 그게 아니어도 자랑거리 하나쯤 갖게 되는 거잖아요.”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다. 이씨가 지도상에 표시했던 지역에서 가장 남쪽인 남강 둔치에 다다랐지만 운석은 눈에 띄지 않았다. 강가 모래사장을 거닐던 이씨는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아쉽긴 하지만 행운은 다 하늘이 내리는 것 아니겠어요. 주말에 동호회원들과 다시 내려와봐야죠. 운석은 분명히 제가 예상한 지역 안에 있습니다.”

 하루 종일 발 아래만 바라보던 고개를 들어 남강 줄기를 바라봤다. 겨우내 마른 강물 위로 오렌지빛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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