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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종군기] 신경가스 경보 울리자 안구 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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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5일 저녁(현지시간) 기자가 있는 곳은 바그다드 남서부 2백㎞. 여기서 1백20km 앞에 미.영 바그다드 공략군의 선봉 보병 3사단 선발대가 도착해 있다. 거기서 32km만 가면 바그다드 사수(死守)부대인 공화국수비대 선봉이 진을 치고 있다. 다시 50km를 가면 드디어 바그다드다.

이제부터 수십km 단위로 이라크 전쟁의 운명이 결정된다. 아니 세계사가 요동칠 것이다. 기자의 종군(從軍)은 사실 지금부터다. 이곳에 도착하자 긴박한 전황이 들린다.

연합군은 이미 공군시설과 사담 국제공항 등 바그다드 일원의 공화국수비대 주요 거점을 맹폭했다. 공화국수비대는 완강히 저항하고 있다. 바그다드에서 남서쪽으로 1백여㎞ 떨어진 카르발라에서 미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기자가 도착한 곳은 알 사마와 인근의 캠프 피터 빌. 5군단 16지원단이 진을 쳤다. 보급기지로는 최전방이다. 이곳에서 3사단 전투병들에게 기름과 식량.탄약을 대준다.

미군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라크의 생물.화학무기다. 경보가 울렸는데 스커드 미사일이 아니라 신경가스 경보다. 신경가스탄은 야포로도 쏠 수 있다고 한다.

스커드는 패트리엇 미사일로 막지만 야포탄은 도리가 없다. 신경가스에 노출되면 안구부터 충혈된다. 26중대의 화생방 담당 브라운 병장은 병사들의 눈에 손전등을 들이댔다.

종군의 길은 멀고 험난했다. 기자가 부대와 함께 이라크 국경 쿠웨이트 사막의 캠프 펜실베니이아를 출발한 것은 24일 새벽 2시30분. 지프와 트럭은 26시간에 걸쳐 4백여㎞를 달렸다. 트럭들은 기름을 실었다. 전투부대에 주기 위한 것이다.

이라크 전장으로 들어가는 부대원들은 잔뜩 긴장했다. 한 병사는 "야간에 적지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기름은 폭탄이나 마찬가지"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오전 9시 부대는 국경을 통과했다. 사막길은 조용했다.

남부의 바스라 항구쯤이었을까. 멀리서 야포와 총소리가 요란했다. 바스라 공방전에서 항복으로 위장한 이라크군에게 10여명의 해병이 죽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들었다.

햇볕이 사막을 달구었다. 기자가 뒤집어쓴 화생방복 밑으로 땀이 흐른다. 샤워한 것은 까마득한 기억. 땀이 물이 되어 모래먼지와 뒤엉킨다.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그래도 이 옷만큼은 벗을 수 없다.

미군 헌병 10여명이 총을 겨누고 이라크군 포로 두명을 조사하고 있다. 손을 머리에 얹고 트럭에 올라타는 두 사람의 얼굴엔 체념이 가득하다.

이라크 알 사마와 인근 캠프 피터빌=안성규 종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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