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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제3세계에 대결보다 화해를"-미 계간지 「포린 어페어즈」에 실린 「톰 파러」씨의 논문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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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여러 국제회의에서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난 미국 등 선진국에 대한 제3세계의 도전은「유엔」탈퇴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대결론자들과 이들의 합당한 요구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화해파들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음은 제3세계의 주장을 역사적인 배경에서 이해하고 화해의 필요성을 강조한 「포린·어페어즈」최신호에 실린『미국과 제3세계』라는 논문을 간추린 것이다. 필자 「톰·파러」씨는 「러처즈」법대교수로 현재 중남미담당 국무성자문위원으로 있다. 여기 요약한 논문은 그가 74년부터 「포린·어페어즈」지를 내고있는 외교문제연구회의 특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집필한 것이다. <편집자 주>
미국은 지난 10년간 「유엔」에서 다뤄진 당면문제에 대해 많은 회원국과 대결해옴에 따라 「유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가로부터 점점 고립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이것은 정말 새로운 사태발전으로 국제협력의 폭넓은 시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에 국제관계를 망칠 염려가 있는 것이다.
소위 남북대결이라는 데는 3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는 전세계의 소득·부 및 국제경제문제에 대한 정책결정권을 어떻게 분배하느냐는 문제다. 둘째 문제는 남부「아프리카」의 두 백인우월주의 정권에 대한 미국의 태도이며 「아랍」 「이스라엘」분쟁에서 미국의 역할이 셋째 문제이다.
각각의 문제는 서로 구별되는 대결양상을 나타내는 것이긴 하지만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는바 이들을 감정적으로 결합시키는 명백한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반식민주의다.
반식민주의의 주목적은 「유럽」지배시대에 남의 저개발국 「엘리트」들의 마음 속에 심어졌던 불평등과 굴욕의 모든 징표와 조건을 제거하는데 있다. 이 목적이 여러 가지 당면문제 전반에 걸쳐 저개발국 입장의 핵심이 되고있다.
제3세계의 국가들은 그들 자신의 불평등이나 인권박탈에 대해서는 동정적인 개입을 하지 않으면서 남「아프리가」와 「로디지아」의 백인지배국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적의를 표현하는 것도 반식민주의의 뚜렷한 증거다. 남「아프리카」와 「로디지아」는 식민지시대에 있었던 백인이민의 흔적이며 식민지시대의 종속지배의 한 예이기 때문에 모든「아프리카」인들은 억압받는 흑인들의 고통을 함께 하려는 것이다.
제3세계의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투쟁하는 「아랍」국 및 「팔레스타인」해방기구 (PLO)를 지지하기 시작한 것도 똑같은 반식민주의적 세계관 때문이다. PLO의장 「야시르·아라파트」가 「유엔」에서 연설한 것이나 PLO의 합법성을 인정한 것은 「아프리카」국가들의 지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PLO를 지지한 것은 도덕적 연대감에서라기보다 「오일·달러」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물론 「아프리카」국가들은 「오일·달러」를 간절히 바라고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잼비아」의 「카운다」대통령이나 「탄자니아」의 「니에레레」대통령 같은 지도자의 열렬한 도덕적 지원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남부「아프리카」의 백인국가문제에 대해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한 관심을 표명하고 PLO에 대해 정치적 동정심을 나타내는 데서 반식민주의가 도덕적으로 2중의 기준을 갖고 있음을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미국과 제3세계 국가들의 주요 싸움터가 된 경제적 분야에서 더욱 뚜렷이 이해될 수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독점적인 힘을 행사했을 때 서구보다 훨씬 심한 타격을 받은 저개발 국가들은 서구 국가들이 석유가격을 인하하기 위해 무력개입을 하거나 경제적 제재를 가하자는 호소에 대해 전혀 지지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이 남북대결의 문제를 관의 분배를 둘러싼 경제적 문제로서 흔히 있는 사회적 갈등의 형태로 해석한다면 석유값과 같은 문제가 생길 때 몇몇 저개발국가의 이탈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식민주의는 저개발국 「엘리트」의 숨어있는 굴욕감의 감정적 표현이기 때문에 제3세계가 보인 친「아랍」적 단결은 전혀 놀랄 일이 못되는 것이다.
보통의 영국인은 흉노족을 만난 일이 없지만 그들의 만행을 주워듣고서 증오심을 품었다.
그러나 모든 제3세계의 「엘리트」들은 식민지지배를 체험했고 이들의 지도자들은 서구의 학자나 외교관들로부터 문명국이 아니기 때문에 국제질서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들어왔다.
수백년 동안 당하기만 해온 이들은 그들 중의 몇몇 국가가 일어서서 그들이 겪은 역사적 고통의 원천에 대해 욕을 퍼붓자 일제히 환호를 올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OPEC에 대한 저개발국의 전면적인 지지는 경제적 이익이 「이데올로기」적 관점에 종속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74년12월 「유엔」총회에서 「국가의 경제적 권리와 의무에 관한 헌장」이 채택된 것도 경제적 요구 이상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권을 주장하려는 집단적인 저항의 외침인 것이다.
그러면 선진국과 제3세계의 씁쓸한 대화를 완화하고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협력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이 취할 수 있는 입장은 어떤 것인가.
미국은 우선 전면적인 화해의 가능성을 확대하기 위해 몇몇 문제에 대해 미국과 제3세계의 차이를 조정해야 한다.
가장 가능성 있는 문제는 남부「아프리카」의 백인지배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다.
미국은 「유엔」결의를 위반하면서 「로디지아」의 광물자원을 받아들였고 남「아프리카」에 전략물자를 수출했다. 73년 28차 「유엔」총회에서 「모잠비크」의 「포르투갈」주둔군 만행에 대해 규탄질의를 할 때 미국은 반대 투표한 4개국 중의 하나였으며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질의를 무시한 남「아프리카」와 「포르투갈」규탄안 결의 때도 반대 4개국에 가담했고 다음해 남「아프리카」에 대한 무기수출금지결의안에는 혼자서 반대했다. 미국 평화적 해결을 변호했지만 거기에 기여한 바는 전혀 없었다. 경제적 문제에 대해 제3세계와의 화해가 가능하며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 오늘날 미국의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고있다.「패트릭·모이니언」이나 「어빙·크리스틀」같은 반화해파는 제3세계가 경제적 공갈·도덕적인 위협을 가하여 서구가 합법적으로 획득한 부를 옭아내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화해의 「제스처」를 쓰면 제3세계는 미국이나 서구가 의지력을 상실한 증거로 해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미국의 행위를 되돌아보면 OPEC가 막대한 부를 끌어들이자 산유국들이 서방세계를 교살하려 한다면 군사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선언이 공식적으로 발표됐고 무력에 호소하자느니 경제적 봉쇄를 가하자는 비공식주장이 들끓었다.
미국의 강력한 외교수단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사용돼왔던 경제적 강제수단이 다른 국가에 의해 미국에 겨냥되었을 때는 「공갈」로 바뀐 것이다.
현재의 국제질서를 유지할 잠재적인 힘은 국가의 상호의존성에 있으며 그것은 협력과 국가간의 경쟁적 양상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인 필요성을 낳고있다. 힘의 균형이 변하지 않았고 따라서 미국이 서구의 절대적인 지배시대에 충분했던 조건으로 제3세계를 계속 명령할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보다 잘못된 생각은 없다.
비록 대결론자들은 화해옹호파가 변함없이 강력한 미국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불안감 속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다. 현실적인 변화와 합당한 요구에 현명하게 적응하는 것은 의지력이 약한 징조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정치의 본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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