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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동양학연구소 간 박은식 전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백암 박은식은 24세 때부터 군란(임오), 정변(갑신)과 혁명(동학)을 지켜보고 나서 언론에 앞장서고 독립협회에 가입했으며 교육에 진력하여 애국계몽·국민교육에 헌신했던 분이다.
선생은 청일·노일전쟁을 겪고 끝내 국권이 일제에 침탈당하게 되자 분연히 중국에 망명, 항일독립투쟁에 가담했고 상해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용운 선생이 『불교유신론』을 폈듯이 선생은 『유교구신론』을 펴서 유교의 개혁을 주장했다. 사변적인 유학에서 지행일치(양명학)의 유학에로, 양반독점의 유교에서 국민적인 유교에로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서양문명이 크게 발달한 20세기가 지나고 장래 21, 22세기에는 동양문명이 크게 발달하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그 근거를 동양적 윤리의 우위에 두었었다.
선생은 단재 신채호 선생과 같이 우리 민족의 위대했던 과거(역사)와 전통에 대한 각성 속에서야 민족의 부활이 틀림없이 있을 것을 믿었다. 민족정신이 살아있는 한 나라는 반드시 부활되리라는 확신을 가졌었다. 그 근거로는 공명하고 투철한 역사의식을 제시했다.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이런 배경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증도」의 역사이기도 하다.
당시의 선구자들은 한결같이 과거의 역사에서, 그리고 위인들에게서 민족의 영광과 전통을 찾으려고 했다. 그것은 바로 국민적 독립과 자주성에의 호소에 결부되는 것이며 민족의 자부와 영광을 손상시키는 자에 대한 항거와도 결부된 것이었다.
박은식 전서는 선생의 생애에 따른 기록이다. 언론·애국계몽활동에서 국민교육에로, 독립운동에서 통사·혈사의 역사저술로 일관된 실천의 기록이다. 이 책은 상·중·하 3권으로 총 1천9백92면에 이르는 방대한 책이다. 상권에는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중권에는 『학규신편』 『왕양명실기』와 『흥학설』 『종교설』 등 30여편의 문고와 역사적 인물의 전기 등이, 그리고 하권에는 『유교구신론』을 위시하여 교육·애국·독립운동에 관련된 수십 편의 논설이 수록되어 있다. 백암 박은식의 연구에 완전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한우근<국사·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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