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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여유 '애프터눈 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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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30대 여성들이 서울 청담동의 한 티 살롱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있다. 이들은 ?2~3주에 한 번씩 친구들과 모여 애프터눈 티타임을 갖는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티 살롱. 오후 4시가 되자 빈 자리가 없다.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손님들은 대부분 ‘애프터눈 티’를 즐기고 있다. 향긋한 차 한 모금과 달콤한 디저트 한 조각, 거기에 웃음과 이야기가 더해진 애프터눈 티 타임이다.

오후 4~5시 무렵 스콘·케이크 같은 디저트와 함께 홍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애프터눈 티. 영국 귀족문화에서 유래됐다. 영국 귀족들은 아침과 저녁을 풍성하게 먹고 점심은 빵·과일로 가볍게 때우곤 했다. 18세기 안나 마리아라는 한 공작 부인이 점심과 저녁 사이 배고픔을 달래려고 차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한 것이 애프터눈 티의 시작이다. 공작 부인은 집으로 찾아온 손님들과도 애프터눈 티 타임을 즐겼다. 이후 상류사회 부인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영국인의 사교 행사로 자리 잡았다. 영국인이 집에서 여는 티 타임에 초대하는 것은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의사 표시다.

영국의 애프터눈 티 문화는 세계 곳곳으로 전파됐다. 중국이나 홍콩에서는 스콘이나 케이크 대신 딤섬과 함께 차를 마시는 ‘얌차’ 문화가 자리잡았다. 홍콩 최초로 영국식 애프터눈 티를 선보인 페닌슐라 호텔은 국제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애프터눈 티 문화가 퍼지고 있다. 애프터눈 티를 즐길 수 있는 티 전문 살롱이 문을 열었고, 애프터눈 티 세트를 따로 선보이는 호텔과 레스토랑이 크게 증가했다. 모임이나 미팅을 애프터눈 티 형식으로 치르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들을 티 테이블 앞으로 불러들이는 걸까.

학부모·가족 단위로 애프터눈 티 즐겨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가장 큰 이유는 ‘사교’다. 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정승호 대표는 “애프터눈 티는 화려한 사교의 장이다. 점심과 저녁 사이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시작됐다고는 하지만 영국에서도 사교의 목적을 우선시한다. 우리나라 역시 사교의 장으로 활용하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30~40대 여성이 애프터눈 티를 가장 즐긴다. 주로 모임이나 친목을 위해서다. 강남의 한 티 살롱에서 만난 주부 김정원(38·서울 잠실동)씨는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티 살롱에 자주 간다”며 “학기 초 처음 만난 엄마들과 음식점에서 밥을 먹거나 시끄러운 커피숍에서 얘기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티 살롱에서 애프터눈 티 메뉴를 즐기며 여유롭게 대화하다 보면 처음 본 엄마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가족 모임을 애프터눈 티로 하는 사람도 많다. “휴일이면 아이들과 애프터눈 티를 즐긴다”는 문지숙(54·서울 삼성동)씨는 호텔이나 티 살롱에 못 가는 날이면 집에서 직접 간단히 쿠키·샌드위치 등을 만들어 티 파티를 열고 가족 대화 시간을 갖는다. 문씨는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아들, 대학생 딸까지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할 기회가 많지 않다. 주말에도 각자 점심 약속이 있는 날이 많기 때문에 오후에 애프터눈 티 타임을 만들어 한 주 동안 밀린 얘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애프터눈 티, 차 우려내는 시간이 관건

티와 티푸드만 있으면 근사한 애프터눈 티 타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지만 애프터눈 티에도 룰이 있다. 사교문화로 시작된 만큼 세팅법부터 마시는 법까지 애프터눈 티만의 매너가 있는 것이다.

 애프터눈 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3단 트레이다. 케이크·샌드위치·마카롱 같은 다양한 디저트가 3단 트레이에 담겨 나온다. TWG Tea 살롱&부티크의 윤상연 마케팅본부장은 “대개 1단에는 스콘과 샌드위치, 2단에는 케이크류, 3단에는 쿠키·초콜릿·마카롱 등 과자류를 올린다. 단맛이 강한 메뉴를 상단에 배치하고 아래부터 먹는 것이 원칙이다. 선택한 메뉴에 따라 트레이의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원하는 순서대로 골라 먹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애프터눈 티를 즐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차 우려내기’다. 차 종류에 따라 필요한 찻잎 양과 물 온도, 우려내는 시간은 다르다. 티백을 담가놓는 것은 금물이다. 최상의 맛과 향으로 차를 음미하려면 우려낼 때 3분을 넘기면 안 된다. 윤 본부장은 “첫 잔과 마지막 잔의 맛과 향이 동일해야 제대로 차를 즐길 수 있다. 2~3분간 차를 우려낸 후 티팟에서 찻잎이나 티백을 건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차와 스콘·마카롱·젤리·휘핑 크림으로 구성된 애프터눈 티 세트. 1인당 1개의 티팟을 마신다.

애프터눈 티 매너
우아하고 격식 있게 마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예요. 차의 향기, 디저트의 달콤함, 함께 자리한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대화하는 여유가 갖춰져야 진정한 애프터눈 티 타임이 완성되죠. 반드시 다양한 티웨어를 갖추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인 티 매너를 알아두면 색다른 애프터눈 티를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국내 1호 티소믈리에 정승호

잔은 미리 데워 놓는다

찻잔을 따뜻하게 데워 놓고, 티팟은 워머 등을 이용해 식지 않도록 온도를 유지한다.

우유와 설탕을 함께 세팅한다

우유와 설탕으로 밀크티를 만들어 마실 수 있다. 우유용 자(Jar, 꿀·잼 등을 담는 작은 병)와 티 전용 설탕을 구비하면 더 좋다.

손님은 티팟을 들지 않는다

집에서 여는 티 파티에서는 집 주인이 호스트가 돼 손님의 티를 따라준다.

티 나이프는 스콘을 먹을 때만 사용한다

대부분의 티푸드를 먹을 땐 티 나이프가 필요없다. 스콘을 반으로 자른 뒤 잼·버터 등을 발라 먹을 때만 사용한다.

차를 너무 뜨겁게 마시지 않는다

고급 찻잎으로 우려낸 차는 약간 식혀서 마셔야 더 섬세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다.

글=신도희 기자
사진=김현진 기자, 촬영 협조=TWG Tea 살롱&부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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