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공과 한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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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19일부터 25일까지 여덟번째 중공 방문 길에 올라 있다.
이번의 「키신저」-등소평 회담은 오는 11월에 있을 「포드」대통령의 중공 방문에 대처하려는 것이기는 하나, 인지 사태로 초래된 「아시아」의 정세 변화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미·중공 대좌라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미국은 이 기회를 통해 인지 적화가 「아시아」의 현상 안정을 깨뜨리는 요인으로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도록 북경으로부터 다짐받고 싶어할 것이다. 한편 북경으로서는 「헬싱키」이후 더욱 노골화한 소련의 「아시아」 진출 기도에 대해 미·중공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할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식에 이르러서는 서로가 자기의 원칙을 상대방에게 밝혀두는 것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한반도 문제는 지금 당장 논의한다고 해서 무슨 신통한 활로가 트이는 것도 아니며, 당장 혈로가 트이지 않는다고 해서 휴전 상태의 현상이 급속히 파괴되는 것도 아닌 만큼, 구태여 그 문제로 인해 회담 분위기를 해치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반도 문제는 미·중공에 대해 다같이 고민스러운 난제다.
미국으로서는 북경의 대소약점을 보충해주는 댓가로 북괴에 대한 중공의 영향력 행사를 요구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중공으로서는 소련과의 대결 때문에 「키신저」의 현상 고정 방안에 다분히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싶으면서도 북괴의 비위를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할 사정을 안고 있다.
이러한 곤혹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중공은 일단 미국과 북괴의 예비적인 접촉을 권유하는 방식을 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키신저」는 한국을 빼돌린 채 진행되는 여하한 북괴 접촉도 완강히 거부, 그 대안으로 미·중공·소련의 남북 교차 승인 방식을 들고 나오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의 한반도 문제 논의는 결국 그 정도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할 것 같다.
이렇다면 이번 「키신저」의 중공 방문의 실질적인 소득은 중공 석유를 개발하기 위한 미국의 자금·기술 지원이나 최혜국 대우 또는 동결 재산에 대한 동시 해제 같은 것 정도로 머무를 공산이 크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역시 한반도 문제이며, 동북「아시아」의 평화모색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우리로서는 차제에 미·중공에 대해 다같이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우선 미국에 대해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대국형 해결 방식의 위험 부담을 지적해야할 것 같다. 한반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적화 혁명」을 망상하는 북괴와 그것을 저지하려는 한국과의 대결인 만큼, 섣불리 중공을 믿고 북괴의 「하노이」식 외교 전략에 말려들다가는 커다란 불행을 몰고 오기가 십상이라는 점이다.
월남의 경우가 그랬듯이 중공이나 북괴 등 「아시아」 공산 집단의 기본 전략은 협상을 통해 자기들의 원칙을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피로해져서 그 원칙에 응할 때까지 무한정 시간을 끌며 버티자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공연히 초조해하며 공산당과의 조기 「데탕트」에 급급한 나머지 우리 자신의 원칙을 양보하여서 안 되는 것이다.
때문에 미국은 행여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주체성을 조금이라도 당혹케 하는 무리와 졸속을 범해서는 안 된다.
한편 중공은 비록 공산당일망정 대국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리 판단 능력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의 중공에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한국의 주권을 인정하고 남북 공존을 받아들임으로써 동북 「아사아」의 평화를 실질적으로 정착시키는 일이다.
미·중공 8차 회담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북괴의 모험주의를 꺾기 위한 양측의 진지한 의견 교환이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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