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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수묵 만화 외국에서 먼저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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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재영(趙在暎·42) 경민대 디지털만화과 교수와 그림책 작가이자 번역가인 조은수(38)씨가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 어린이 책 박람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85인’에 뽑혔다. 세계 최대의 어린이 도서축제로 꼽히는 이 행사는 올해가 제 40회로 내달 2일부터 나흘간 열린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작가가 선정되기는 이번이 처음이고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까지 포함하면 1996년 이담(재미작가)씨와 지난해 아이빈드 굴릭센(노르웨이 입양 작가)에 이어 세번째다. 각국에서 응모한 2천4백3명 중에서 선발영예를 안은 조재영 교수를 만났다.


조 교수의 작품 중 하나인 '만수네 소'.

지난 1월 말. 조교수에게 느닷없이 '긴급(Urgent)'이라고 적힌 e-메일이 도착했다. "당신을 볼로냐 어린이 책 박람회 선정 일러스트레이터 후보로 올리고 싶습니다. 가급적 빨리 작품을 보내주세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우리 만화의 해외 홍보를 위해 영어.불어.중국어로 제작한 '한국만화 가이드'가 지난 1월 프랑스 앙굴렘 국제 만화페스티벌에서 배포됐고, 이 책에 실려 있던 조교수의 그림이 볼로냐 박람회 관계자의 눈에 쏙 들어왔던 것이다.

"응모한 적도 없는 박람회에서 작품을 빨리 보내라기에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어요. 부랴부랴 보내기는 했는데 올해의 작가로까지 선정될 줄은 몰랐죠. 우리의 정서를 수묵화와 만화를 결합해 표현하고자 했던 제 의도를 외국인들이 (알리기 전에) 먼저 알아주었다는 사실이 가장 기쁩니다."

그는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동양화과 대학원과 디자인 대학원까지 마치고 그가 생각한 것은 수묵화와 만화의 접목. 가장 한국적인 방법으로 한국인의 심성을 재미있게 그려보고 싶었다.

"제 그림을 보고 이게 수묵화냐, 만화냐 묻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하지만 저는 굳이 장르를 구분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제 나름대로 담아낼 뿐이죠."

지난해 어릴적 충청도 시골 추억을 그린 작품을 모아 펴낸 '고향 이야기'(초록배매직스)에는 시원한 붓터치로 그려진 아름다운 우리 산하와 섬세한 대나무 펜으로 표현된 순박한 시골아이들의 코믹한 표정이 잘 어울어져 있다.

"수묵화와 만화의 결합이 서로를 젊고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게 미술평론가인 인하대 성완경 교수의 평가다. 그의 그림은 2000년 중앙일보에 연재됐고, 2001년에는 한국담배인삼공사 캘런더 그림으로도 소개됐다.

갑작스런 초대를 받은 조교수의 마음은 부산하다. 한국출판문화협회가 박람회장에 마련한 한국관 한 귀퉁이에 가까스로 가장 작은 부스를 마련했다.

출판사 측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번 박람회에는 조교수 혼자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어판 '고향이야기'와 직접 만든 약간의 책갈피와 팸플릿을 들고서.

박람회 전시가 끝나면 그를 포함한 85명의 작품은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1년간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곧 영어판이 출간되면 올해는 그에게 몹시 바쁜 해가 될 것 같다.

한편 조교수와 함께 선정된 조은수씨는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큰 기대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있다는 걸 알린 점에서는 뜻이 깊지만 그 이상의 과도한 의미 부여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97년부터 3년간 영국에서 그림 공부를 한 뒤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선 조씨는 신문지나 골판지를 이용하는 등 규격화된 그림책 풍토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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