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육 과정의 폐쇄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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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일 문교부 주최 대학 교육 과정 개선 「세미나」에서 개진된 의제들은 이 나라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가로막고 있는 근본 요인이 어디 있는지에 대해 매우 함축 깊은 지적을 하고 있어 주목된다.
우선, 현행 대학 교육 과정이 학과 중심 또는 교수 위주로 편성되어 너무 폐쇄적이라는 지적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이는 대체로 세가지 요인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연역할 수 있을 것인바, 그 첫째는 대학의 교육 과정을 법령으로 지정하는 망발이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점, 둘째로 대학의 학칙을 문교부의 행정 관료가 주무름으로써 대다수의 대학들이 아무런 주체성도 없이 천편일률적인 베껴 쓰기식 교과 과정표를 그대로 채용하고 있는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 또 한가지 이 나라 대학 교수 자신들의 지나친 권위주의와 폐쇄성 등이 「업·투·데이트」한 교과 과정 발전 계획을 마련하는 협동적 노력에 「브레이크」를 걸어 대학 교육 과정 전체로서의 균형이나 시대 감각을 잃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리하여 이 나라 대학들 중에는 오늘날 학문 기술 발달의 추세인 인접 학문간의 긴밀한 연계화나 학문 분야에 있어서의 고도의 세분화라는 두 경향의 어느 한가지도 쫓기가 어려운 어정쩡한 교과 과정의 운영을 강요 당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세미나」에서 지적된 ①학문 영역별 연관성의 유지가 어렵고 ②필요 이상 세분된 교과목이 있는가 하면 ③고교와 대학 교과간에 중복된 내용이 많고 ④필수 과목의 과다와 선택과목의 과소 등 여러 모순들은 요컨대 위에서 지적한 근본 요인이 빚어낸 당연한 귀결이라 해서 과히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인문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또는 자연과학이건 간에 오늘날 인접 학문 분야와의 긴밀한 연계 없이 성립할 수 있는 학문이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사회학과 심리학, 경제학과 역사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물리학·생물학 등이 서로 깊은 연계를 가짐으로써만 오늘의 학문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나라 대학들이 이 엄연한 추세를 외면한 채 혹은 학과중심 혹은 교수 위주로 학문 사이에 서로 두터운 벽을 쌓고 독불 장군의 교육 과정을 몇십년째 답습해 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학문의 전당으로서 대학의 본질을 저버린 처사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나라 대학 교육의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 두터운 벽을 제거하기 위한 과감한 조처를 취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1차적으로 교수들 자신의 마음속에 도사린 편협한 권위 의식을 몰아냄으로써 같은 과 또는 같은 학문 계열별 교수들의 자발적인 공동노력에 의한 새로운 교육 과정 편성을 서둘러야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우선은 이 나라의 몇 몇 지도급 대학들의 주체적인 공동 노력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모든 대학학사 행정이 이러한 「인터디시플리널」한 교육 과정 운영 중심으로 바뀌는 제도적 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예컨대 교수의 임용이나 담당 과목 배정 또는 연구비의 지급 등이 모두 이 공동 노력을 전제로 한 강좌 중심제로 바꾸어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나라 대학 교육의 목적이나 목표에 대해서 보다 뚜렷한 방향을 설정하는 것임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지적으로 극히 세련된 소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냐, 아니면 넓고 균형잡힌 교양인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냐에 따라 오늘날 대학 교육의 양상이나 그 제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상기할 때, 그러한 지향성이 뚜렷하지 못한 것이 이 나라 대학 교육의 모든 문제성의 근원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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