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의 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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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철학은 쓸모 없는 학문』이라고 누가 말하자 「칼라일」은 『태양은 담뱃불을 켜는데는 소용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태양의 결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철학이란 말을 문화로 바꿔써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문화가 정치나 경제만큼 쓸모 있는게 못 된다고 보는 사람은 많다.
2차 대전 때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남은 두 유태인이 있었다.
그들은 음악가들이었다는 이유로 음악을 애호하는 독일인들이 살려준 것이다.
문화의 힘이란 이렇게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뒤아멜」이 말했듯이 음악을 그처럼 사람하던 독일인들이 동시에 잔인한 살인마들이었던 것이다.
문화란 본래 음악·미술·문학·연극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광고 포스터」도, 지하도입구의 영조물도, 「텔리비젼」의 「쇼·프로」나 CM도, 그리고 심지어 여자가 아이 보는 방식과 밥 먹는 습관까지가 모두 문화의 일부분이다.
영국의 TV에서는 어린이 시간에 나오는 만화의 주인공을 CM엔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꿈을 지키기 위해서다.
장난감의 CM에는 가격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너무 비싸서 부모가 사주지 못 할 때에 어린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랑스」의 도시에서는 자기 집 지붕 빛깔을 마음대로 정하지를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웃집과의 조화를 지키기 위해서다.
이런 것이 문화다. 우리가 가장 관심을 모아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우리의 일상 생활 속의 문화들이다. 그러나 이런 문화에는 아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오늘 제3회 문화의 날을 맞는다. 이날의 잔치에도 이런 문화들은 한몫 끼지 못한다.
잔칫날답게 오늘 갖가지 상들이 푸짐하다. 그러나 상금으로 문화가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소동파가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마친 다음에 부른 배를 어루만지면서 애첩들에게 『이 뱃속에 뭣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애첩들은 제각기 『문학이 들어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운이란 애첩은 『그 뱃속에는 잔뜩 추한 생각이 가득 차 있을게 뻔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동파는 이 말을 듣고 매우 흡족한 듯이 껄껄 웃었다.
꼭 배가 부르다고 시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배가 고프다고 아름다운 생각이 안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물론 배불리 음식을 먹는다고 좋은 예술이 안나오는 것은 아니다. 예술과 배와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소동파 한 사람만으로 송나라의 문화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을 사람들은 잊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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