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기획] 여군 있는 곳에 성역 있다 여군 가는 길에 성역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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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진 소위

▶ 배나라 대위

▶ 안희현 중위

서울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 방공 포대. 수도 하늘을 지키는 공군의 핵심 전술 포대다. 대원 160여 명 중 여군은 단 한 명, 김유진(26) 소위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사격 통제 중대장인 그의 최종 명령이 떨어져야 수억원짜리 호크 미사일이 발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에서 여성은 더이상 꽃이 아니다. 2004년 현재 여군 장교와 부사관은 각각 2105명, 1584명으로 전체의 2.2% 수준이다. 이들은 일선 부대 중대장과 부사관에서 전투 함정 승선, 전투기 조종에 이르기까지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금녀구역은 없다=강원도 ×××통신단의 배나라(32)대위는 2월 말 일주일간의 혹한기 야외훈련을 부대원과 함께했다. 30㎞ 행군도 했다. 배 대위는 "1인용 텐트에서 혼자 자는 게 너무 추워 4명이 함께 자는 사병들이 부러웠다"고 털어놨다. 여자라고 우습게 봤다간 큰코 다친다. 남자보다 더 엄격하게 규율을 적용하는 '독한 여군'이 많다. 오산 방공통제소의 김지혜(28)대위는 지난해 한 사병을 완전군장 차림으로 산악구보를 시켰다. 그 사병의 부친에게서 "아들이 너무 고생한다"는 항의가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서였다. 김 대위는 "정신력 강화를 위해 1시간만 돌리려 했는데 일하느라 깜박 잊어 오후 한나절 동안 돌게 했다"며 웃었다.

각군 근무규정에 따르면 여군의 보직은 원칙적으로 제한이 없다. 공수나 대테러 임무 등 특수부대도 예외가 아니다. 여군과 남군의 차이라면 복장과 출산 휴가, 보건 휴가 정도다. 여군에겐 스커트.하이힐.출산복이 따로 지급된다. 피복비도 남성 장교, 부사관보다 매년 15만원을 더 받는다. 그 외 보수.보직.근무에선 차별이 없다.

'금남'의 공간 생긴다=서해 해상분계선(NLL)을 지키는 해군 2함대의 기함은 을지문덕함이다. 이곳 제10 사관실 벽에는 여성 표시의 마크가 붙어 있다. 마크 옆 문을 열고 들어가면 디지털 도어록이 달린 두 번째 문이 나온다. 이 전투함의 통신관.유도관인 박주미(24).안희현(25) 중위와 김미경(26).권진선(25) 하사의 방이다. 함장(대령)도 이곳은 출입금지다. 정례 숙소 점검 때 함장은 사전에 인터폰으로 '방장'의 허락을 맡고 주임원사와 동행해야 한다. 현재 상륙함(LST)으로부터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에 이르기까지 17척의 군함에 모두 34개의 '금남'의 여군 침실이 만들어져 있다.

공군 김유진 소위는 매달 서너 차례 야간 당직사령을 맡는다. 김 소위가 포대에서 밤을 새울 때 포대 내무실에는 김 소위만이 들어간다. 당직 부사령은 다른 건물의 상황실에 머문다.

여군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출산과 양육이다. 여군 조종사 중에는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 변화로 조종을 포기하는 일도 생긴다. 육군의 한 여군 장교도 "출산으로 1년 정도 쉬면 경력.보직 관리에서 밀린다"고 털어놨다.

평택.오산=채병건 기자

*** 색깔있는 매니큐어

여성 소대장이 사병 신체검사를 통제한다. 단 사병들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경우 남성 부소대장에게 맡긴다. 여름철 상의를 벗고 근무할 경우 여군은 T자형 러닝셔츠를 착용한다. 인조 속눈썹은 금지되고 매니큐어는 투명 또는 피부색만 허용된다.

*** 스커트 차림 함상 근무

남녀가 밀폐된 공간에서 1대1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여군 침실에 남군이 출입하려면 업무에 한해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오후 10시 이전만 가능하다. 함상에서 근무할 때 여군은 스커트를 입을 수 없다. 임신한 여군에게 15분 이상 차렷 또는 열중쉬어 자세를 명령하지 못한다.

*** 남자 화장실 순찰

부대원 훈련 때 신체적 접촉이 이뤄지는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법은 여군끼리 한다. 임신 7개월부터는 당직에서 면제된다. 여군 장교의 당직 근무 때 남자 화장실, 목욕탕 등의 순찰은 남성 부관이 맡는다.

*** 내부 이성교제

이 밖에 육.해.공군 모두 내부 이성교제는 금지된다. 육군은 지휘계통 바깥의 '미혼 남성'과의 교제만을 허용한다. 해군의 경우 함정에 '맘에 드는 짝'이 있다면 한쪽이 근무지를 바꿔야 한다. 군에서는 성희롱.성폭력 같은 '성군기 위반'에는 친고죄 규정이 없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더라도 무조건 징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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