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대책의 허실 (4)|정영모 <한국 은행 조사 1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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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석유 파동의 충격이 일단락 되면 고개를 수그리리라고 기대하였던 물가는 석유 파동 2년째를 맞이한 올해에도 20% 전후의 상승이 예상된다하니 요즘의 「인플레」를 석유 파동의 탓이라고만 할 수 없을 것 같다. 석유 파동을 계기로 한 「인플레」는 세계적 현상으로서 유독 우리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석유 파동 이후 각국은 전통적인 총 수요 억제 정책에서 소득 정책·가격 통제 정책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책 수단을 다 동원하여 「인플레」 수습에 나섰던 것이다. 그러나 정책 실시의 지연, 금융·재정·외환 등 제 정책간의 불균형 등으로 나라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총수요 억제 정책을 재빨리 그리고 강력하게 실시한 나라는 비교적 빨리 안정을 이룩하였으나 그렇지 못한 나라는 「인플레」의 진정이 여의치 못했다.
일반적으로 「인플레」를 유발시키는 요인으로서는 과도한 통화 공급에 의한 수급간의 불균형, 즉 초과 수요의 존재, 생산 요소 「코스트」의 상승, 독과점 경제 체제하의 관리 가격 형성 등 불합리한 가격 기구, 수입 「인플레」, 「인플레」 심리의 작용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와 같이 복잡다기화된 「인플레」의 원인을 근거로 하여 그리고 석유 파동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통화 정책을 통한 총 수요 관리라는 전통적 「인플레」 대책의 효과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석유 파동 이후 원유 수입 의존도가 비슷한 국가간에도 물가 상승의 정도가 다르며 긴축 기조로 재빨리 전환한 나라일수록 정도가 심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과도하게 공급된 통화가 과소한 재화를 쫓기」 때문에 「인플레」가 유발된다는 통화주의 이론이 아직도 하나의 진리로서 통용될 수 있다는 것을 예증한다고 하겠다.
우리 나라의 물가는 72년 8·3조치에 따른 물가 안정 대책에 힘입어 안정세를 보여주는 듯 하였으나 석유 파동과 더불어 74년에는 40%를 넘는 높은 등귀율을 나타내었고 금년에도 20% 전후의 상승이 예상된다.
석유 파동 2년째를 맞이한 오늘에 와서는 이러한 물가 상승의 원인을 석유가의 상승과 같은 「코스트」 요인에 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통화 공급을 통한 유효 수요의 뒷받침 없는 「코스트·푸쉬」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73년의 이례적인 호황과 수출 신장에 따라 공급된 과잉 유동성 등으로 잠재해 있던 「인플레」 요인이 석유 파동을 계기로 현재화하였다는데 주요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이와 같이 요즘의 물가 상승의 주인이 과잉 유동성의 공급에 있다면 「인플레」는 재정 금융 정책을 통해서 수습되어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화 정책을 주축으로 하는 총 수요 관리 정책은 자유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서 비교적 작은 마찰로 경제 전체의 자율적 균형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도 그 활용이 소망스럽기도 하다.
이에 덧붙여 장기적이며 기술적인 문제에 속하기는 하나 통화의 연간 증가율의 자동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아쉽다는 것이다. 예컨대 물가 상승률 또는 경제 성장률과 같은 지표를 하나의 기준으로 설정하고 추가 통화의 공급량은 이 기준의 변동폭에 연동 하여 움직이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연도에 따라 통화의 공급량이 심한 기복을 보이는 폐단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가 통화 공급량의 결정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이득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같이 연간 추가 통화 공급 규모가 자동화 내지 객관화될 수 있다면 이는 또한 기업이나 소비자가 연간 「인플레」율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게 되어 「인플레」의 향방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최소화함으로써 「인플레」 기대 심리를 없애는데도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밖에 원가 상승을 빙자한 독과점 기업의 관리 가격의 자의적 인상의 규제라든지 유통 구조의 근대화를 통한 유통「마진」의 감축 등 일련의 대책을 생각할 수 있으나 이에 따라 야기될 부작용과 실시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현 시점에서의 가장 효과적이며 택일적인 「인플레」 규제책은 역시 재정 금융 정책을 통한 적절한 총 수요의 관리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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