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은행의 한국 경제 평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세계 은행 (IBRD)은 「한국 경제 성장과 전망」이란 평가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에 이룩한 경제 성장과 산업 구조의 변화를 높이 허가하면서도 한국 경제가 내포하고 있는 여러 문젯점들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경제적 성과는 내외에 널리 알려지고 있는 사실이므로 새삼 논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IBRD가 지적한 당면 과제는 어차피 우리가 해결하지 않고서는 또 다른 전진을 기약하기 어려울 것임을 유의한다면 정책 과제로서 철저한 분석과 대책이 아울러 마련되어야할 것이다.
우선 성장 성과가 높은데 비례해서 국제 수지 구조가 불건전해지고 있다는 평가는 지능적인 성장의 유지를 위해서 절대적으로 해결해야할 허점의 하나다.
투자의 해외 의존도가 심화되고 그것이 국제 수지 적자폭의 확대·외채 상환 부담의 가중이라는 악순환 과정으로 빠져들고 있다면 정책 기조에 문제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책 기조의 조정을 통해서 악순환 과정을 어떻게 단절해야할 것이냐 하는 본질문제를 차제에 성실하고 광범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물론, 원유 파동 이후의 내외 정세 변화로 어찌할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인과 관계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구실로 언제까지나 임기응변적인 정책이 거듭될 수는 없는 것이며, 때문에 우리의 성장 정책·투자 정책이 내외 여건으로 보아 적절한 것이며, 또 장래를 충분히 내다본 것이냐에 대해 일단 깊이 음미하고 넘어가야 한다.
다음으로 원유 파동 이후의 세계 경제가 광란 물가에 휩싸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를 진정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으며, 국제 수지도 바로잡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공업 부문이 30%나 차지하고 있는 공업 한국의 국내 물가가 국제 수지 문제에서 근본적인 애로에 봉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스스로 재평가해야 할 국면이다. 이 문제가 규명되어야만 경제 체질의 개선이란 과제도 풀릴 수 있을 것이므로 높은 물가 상승률의 근본 원인을 단순한 수입 「코스트」 압력으로 돌리려는 편법은 이제 그만 원용해야 한다.
또 IBRD가 지적한 수출의 대미·일 편중성과 수출 상품의 단명성에 대해서도 깊은 연구와 대책이 있어야할 것이다. 우리의 특수 사정 때문에 자본 도입의 미·일 편중이 불가피했고, 따라서 수출 의존도도 그에 편중될 수밖에 없다고만 본다면 앞으로도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편중된 경제 협력이라 하더라도 외자 도입과 투자 계획이 엄중히 선별되었더라면 수출 상품의 수명이 그렇게 짧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투자 정책과 기업 풍토의 부조리·불합리 문제가 새삼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기업 풍토는 장기적인 착실한 축적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초과 이윤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경박성이 지배하고 있어 단기적 시야에서 탈피치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외자의 낭비로 귀결되는 일시적 수출을 위한 투자와 낭비가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
끝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근자의 경제 정책이 과연 한국 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본질 문제와 어느 정도 밀접히 연관되고 있는가를 차제에 냉정히 평가해 보라는 것이다. 근자의 경제 정책은 표층에 나타나는 사실을 따라가기에 바쁠 뿐 심층에서 형성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젯점에 대해서 배려하는 바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