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의 학력 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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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국 고교생의 학력 검사 결과는 고교의 평준화를 위해 시행된 대도시에서의 새 진학 제도의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다.
최근에 밝혀진 시·도별 초·중·고교생의 학력 검사 결과 대비표에 의하면 국민학생과 중학생의 학력은 74년도에 비해 다소 향상을 보이고 있는데 비해 고교생의 학력은 분명히 하향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비록 출제 내용은 다르지만 국민학교의 평균 성적이 74년도의 59·2점에서 올해 61·8점, 중학교는 57·6점에서 58·8점으로 각각 향상의 경향을 나타냈으나 고교의 경우 45·5점에서 45·l점으로 더욱 낮아졌음을 보여 주었다.
물론 서울을 비롯한 6개 시·도의 학력 검사가 아직 실시되지 않아서 그밖의 지역 고교생의 학력 저하 현상을 보고 간단히 새 제도의 실패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속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고교 학력의 하향 경향 그 자체가 분명히 나타난 것은 일단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현 여건이 조성된 탓이라고 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이러한 여건 가운데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배정 진학 제도의 내재적 모순들을 들 수 있다.
이미 학교 평준화 시책이 안고 있는 중대한 결함에 대해서는 본란이 누차 지적한 바 있으나 최근에 와선 그 결정적인 약점이 계속 노정 되어 그 시정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가령 사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운영란은 말할 것도 없고 학습 지진아의 가 진급 또는 자퇴 형식의 퇴교 사태 등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다 고교에서의 학습 의욕 감퇴가 일반화해서 전반적인 「저질화로의 평준화」가 선전되고 있다는 증거가 이번에 다시 제시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라 할 것이다.
평균 45·1점의 낙제점 고교 학력은 결국 새 고교 진학 제도가 가져다준 부작용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라고 하겠다. 지적 능력의 향상을 가장 주된 목표로 해서 채용된 교육 제도가 학력 저하의 원인이 되는 경우 그 제도의 존재 이유는 계속 주장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교 교육은 대학 교육의 전 단계로서 비교적 높은 지적 성취를 목표로 하는 과정인 만큼 새 진학 제도의 명분이 어떻든 그것이 전반적인 학력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면 그것 만으로써도 이미 그 제도의 존재 의의는 상실한 것이다.
사실, 「평준화」 시책이 말 그대로 학교 시설이나 교사진 등 모든 면에서의 실질적인 평준화를 가져올 수 있고 또 그 결과 고교생의 학력이 향상 추세를 보이게 된다면 이론상 이처럼 바람직한 것은 없다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처음부터 어불성의 이상론에 불과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힉생 개개인의 능력차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학교마다 전통과 시설이 다르고, 교사들의 능력과 지역간의 격차마저 현저한 실정을 고의로 눈감고, 「평준화」 운운을 말한다는 것부터가 매우 비 현실적인 시책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검사에서도 충북이 35점, 제주가 56·3점으로 지방간 학력차의 심각성이 현저히 부각되고 있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또 정부가 재정 형편상 사립은커녕 공립 학교간에 있어서도 시설·교육 내용상의 개선을 위한 투자를 알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면, 이미 분명해진 갖가지 모순아래 새 제도를 이 이상 존립시켜야 할 명분은 완전히 사라졌음이 분명하다.
되풀이 말하거니와 고교 배정 진학제의 부작용이 계속 문제만을 더욱 확대하고 교육 효과를 증진시키지 못하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이제는 하루 빨리 이를 철회하고 경쟁적인 고교입시제로 복귀하는 조처가 시급하다고 하겠다. 교육에 있어서도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돌려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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