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어이름은 세라, 세라믹 세계 1위 하려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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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 부품 제조·수출업체인 세라트의 은경아 대표는 “골리앗을 이긴 다윗처럼 세라믹 부품 분야 세계 1위 업체인 일본의 교세라를 넘어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증권회사 IT팀에서 근무하던 그는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뒤 2009년 세라트를 설립, 세계 명품업체 30여 곳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박종근 기자]

‘그래, 어디 한번 해볼까?’ 첨단 세라믹 제품을 만드는 세라트의 은경아(39) 대표는 바이어로부터 갑작스러운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되뇐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일종의 ‘자기 주문’이다. 2009년 무역업으로 사업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그랬다. 한 세계적 명품업체가 시곗줄로 쓸 세라믹 제품을 만들 곳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주요 제조업체들이 단가와 납품기일이 맞지 않는다며 손사래를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 은 대표가 “내가 해 보겠다”고 나섰다.

 “시제품을 받자마자 한국에 있는 제조회사들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죠.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찾은 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어요. 납기를 맞추기 위해 공장 직원들과 며칠 밤을 함께 새웠어요.” 그렇게 명품업체와의 첫 계약을 성사시켰다. 곧 업계에 입소문이 났고 그를 찾는 바이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세라가 못하면 아무도 못한다’는 말도 돌기 시작했다. ‘세라’는 그의 영어 이름이다. 2011년부터는 직접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세라트의 주력 제품은 ‘지르코니아 세라믹’으로 전량 해외 수출한다. 세라믹 중에서도 강도가 높고, 색이 잘 변하지 않아 주로 명품업체들이 많이 쓴다. 세라트는 현재 지르코니아 세라믹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2위다. 세계적인 명품업체만 30여 곳이 그의 고객사다.

 이런 은 대표도 20대 때는 평범한 대기업 직장인이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증권사 전산팀에서 일했다. 꿈이 있다면 임원을 한번 달아보는 것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시련이 그의 인생 행로를 확 바꿔놓았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다. 간호를 위해 사흘에 하루꼴로 병원에서 밤을 새웠다. 이런 생활이 오래가면서 치열한 경쟁의 연속인 대기업에선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결국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두고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그는 “그곳에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저력을 봤다”고 했다. 생각보다 좋은 중소기업 제품이 많았고, 마케팅만 잘하면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이다. 증권사에 남아 있었다면 결코 접하지 못할 세상이었다. 34세에 독립을 선언한 뒤 고데 같은 소형 가전 제품을 싸들고 스위스로 가 바이어들을 무작정 만났다.

 5년간의 고속성장으로 회사는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경기도 광주를 비롯해 수도권에 공장만 세 곳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업을 시작할 때처럼 운동화를 신고 본사와 공장을 뛰어다닌다. 영원히 ‘틈새시장의 강자’로만 남을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첨단 파인 세라믹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의 타깃은 일본 교세라다. 수십 년간 전 세계 세라믹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골리앗’ 같은 존재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무기는 유연성이다. 그도 마찬가지다. 그는 “조직과 설비 규모에선 교세라와 비교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바이어의 어떤 주문에도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과 함께 품질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세라트가 유연한 건 현장과 본사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의사결정도 빠르게 할 수 있는 구조를 짜놓은 덕이다. 은 대표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모두 거치면서 각각의 장점을 조합할 수 있었던 결과다.

글=안지현 기자
IBK기업은행 ·중앙일보 공동기획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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