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구제보다 인플레 수급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런던=박중희 특파원】경제위기의 심각화가 반드시 정치의 과격화·좌경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주 영국 서북해안 「블랙풀」에서 열린 영국 노동당 연차 대회는「윌슨」수상과 「힐리」장상 등 당내 중도파가 내세워온 경제 수습책을 압도적으로 지지·확인함으로써 그 동안 주목돼온 과격좌파의 도전을 가볍게 물리치고 막을 내렸다.
당내 중도파의 정치적·도의적 권위의 바탕을 이루게될 이번 대회 결정의 골자는 「인플레」수습을 우선시켜 임금상승을 주 6「파운드」로 한정하는 등 긴축 정책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가보다는 고용문제에 초점을 두고 「윌슨」정부의 『체2차 사회개혁』에 정면으로 도전해온 좌파의 패퇴를 의미한다.
「벤」동력상과「미카르도」의원 등을 주축으로 한 당내 좌파는 전투적인 좌파노조와 연합, 그 동안 악화되어온 실업사태(1백20만명)의 구제에 보다 큰 역점을 두고 정부는 공공지출의 증대를 통한 경기회복에 힘쓰라고 주장했다.
「노동자의 당」으로서 일견 그럴싸한 이와 같은 좌파의 요구나 압력이 결국 햇빛을 보지 못하고 끝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우파가 「윌슨」의 강력한 압력단체인 TUC(노조 연맹)의 핵심적 지도층과 당내 좌파의「리더」를 정부 지지의 방향으로 규합하는데 성공한 점이다.
노조 거물들이 무엇보다 『노동당 정부의 방위』라는 명분으로 「윌슨」의 반「인플레」정책의 지지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 하나의 중요한 요소를 이룬 것은 분명하다.
더욱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지금까지 좌파의 한 지주를 이루어온 「우트」노동상이 그의 엄청난 영향력을 중도적이고 온건한 정책의 옹호로 행사한데 있었다.
「후트」나 노조간부, 그리고 정부간을 결합시킨 하나의 공통된 고려는 위기가 심각화 하는 현 단계에서 우선권이 부여되어야 할 점은 계급적인 이익을 위한 급진적인 사회주의화보다는 지금까지 경제적·정치적 기본 질서 그 자체를 위협해 온 악성 「인플레」의 저지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가 중도파의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승리를 보장한 것은 아니다. 당 대회가 중도파의 거물인 「힐리」의 당 집행위원 자리를 좌파로 대치시킨 결정은 중도파의 지나친 자신에 대한 견제와 경고를 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윌슨」의 「인플레」수습책이 앞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 좌파의 도전이 없어지기보다는 한결 격렬한 형태로 다시 고개를 들 위험성이 남아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