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 속의 새 의사당(여야 격돌 촉발한 김옥선 의원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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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학설적 얘기는 그만하시오>
검은 「싱글」에 「넥타이」차림의 처녀 김옥선 의원이 발언대에 나선 것은 8일 하오 6시33분. 『1백35억원을 들인 석조전인 국회 의사당에서 발언하게 된데 대해 영광과 기쁨보다는 죄책감과 서글픔이 앞선다』고 말문을 연 김 의원은『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행정부를 상대로 뭣을 물어 볼 것인가』고 반문, 『정치 상황의 본질부터 따지겠다』며 곧장 체제문제를 거론.
김 의원은 지난 5월13일자 미국의「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 내용을 예로 들면서 대통령에 관한 발언까지 하자 여당의석에서 『의장, 발언 중지시키시오』라는 첫 고함이 터져 나왔다.
서론부분을 끝낸 김 의원이 정치학자「뉴먼」이나「브르제진스키」의 분석결과를 원용, 우리 나라의 정치 현상을 설명하자 항의가 터졌다.
국회 속기사는 문세익 발언부분을 『…지난여름 전국을 뒤흔든 각종 관제 안보궐기대회, 각 민방위대편성, 각종 학도호국단 조직, 요즘 「텔리비젼」에 나오는 군가 그리고 정부의 끊임없는 전쟁 위협 경고 발언, 싸우면서 건설하자는 구호…(장내소란)』라고 속기했다.
이때 시간은 하오 6시40분, 김 의원이 발언을 시작한 지 7분이 경과했을 때였다.
이때 의석에서 김용태·이영근 두 여당 총무는『그게 사회 문제냐』고 고함을 쳤고 사회를 보던 김진만 부의장이『김 의원, 학설 적인 얘기는 그만하고 질문을 하시오, 질문을…』이라고 요구.-
김 의원이 계속 과격한 발언을 계속하자 신형식 의원(공화)이 의석에서『국회 깰라고 그래』라고 고함을 쳤고 홍병철·김용채 의원(공화)이 『관제안보가 뭐냐』고 했으며 신동관(공화)·서영희(유정) 의원은 의석에서 책상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이어 여당 의석에서 『야당도 안보 궐기 대회에 참석치 않았느냐』(이도선), 『이제까지 참으면서 들어주었지만 한계가 있다』(지종걸)는 등 고함이 일었다.
신민당 의석에서는 이에 맞서 『김 의원이 이론 설명하는데 왜 그러느냐』(송원영), 『때 만났구나, 때 만났어?』(이중재), 『야당 안해 봤어』(김동영 의원이 김용성 의원을 향해)라고 응수.

<발언내용 녹음기로 재생>
장내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자 김 부의장은 『정회를 선포합니다』고 재빨리 방망이를 쳤다.
정회 선포 이후에도 여야의 설전은 계속돼 송효순 의원(유정) 은 『공산당 때려 잡자는데 관제 안보가 뭐냐』고 고함을 쳤고, 이중재 의원(신민)은『총리가 온 다음에 떠들어라』고 야유.
발언자인 김옥선 의원은 정회 선포 후 5분 동안 발언대에 그대로 서 있다가『발언 안 하려면 뭐하러 국회 의원이 됐느냐』면서 하단. 6시50분쯤 여당 의원들은 의총을 위해 본회의장을 떠났다.
본 회의가 정회된 직후 열린 공화·유정 합동 긴급 의원 총회는 김옥선 의원의 발언내용을 녹음기로 재생, 청취한 후 토론을 전개.
▲김 총무=민주주의 전당에서 공산주의 탈을 쓴 자가 공산주의자보다 더한 소리를 한 것을 묵과할 수 없다.
의장단·상임 위원장·국무총리 이하 관계 각료·공화·유정 당직자 등이 연석회의를 갖고 처리방안을 협의하겠다.
밤을 새워서라도 법사위에 넘겨 처리할 방침이다. 과감한 조치를 해야한다.

<국회 일이니 스스로 해결을>
▲오유방 의원(공화)=의원의 본회의 발언에 면책 특권이 있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정치적 책임이라도 물어야 한다.
▲김용성 의원(유정)=행정부와의 연석회의는 야당 관계도 있으니 곤란하다. 우리끼리만 우선 논의하자.
▲지종걸 의원(유정)=그게 무슨 상관이냐.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구속을 요청 한다든가 하는 얘기가 있을 수 있고 우리는 이에 동의하면 될 것 아니냐.
▲이 당의장=김용성 의원 말이 맞다. 국회 일이니 국회 스스로 방안을 강구해야지 행정부 측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백남억 총재 상임 고문=신민당 총재에게 당하리라고 예상했던 것을 무사히 넘어가나 보다 했더니 김 의원에게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울분만을 터뜨리지 말고 앞뒤를 다 재서 용두사미 격이 되지 않도록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당장 무슨 조치를 취한다 해도 내일 모레 딴 사람이 나와서 또 할 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까지 생각해야한다.
▲김 총무=그럼 우리끼리만 다시 상의하기로 하자.
▲지종걸 의원(유정)=취소나 삭제는 실언일 경우가능 한 것이지 이번과 같이 앞뒤를 다 재고 의도적으로 한 발언은 취소로 그칠 수 없다.
▲김명회 의원(유정)=이 문제를 정치적으로는 안보 위협 운운한 발언에 대한 공세를 펴서 적극적인 사과를 받는 것이고, 법적으로는 징계나 구속을 하는 것 등이다.(이때 의석에서 우리는 제명만 하면 되고 구속은 행정부가 할 사항이라고 소리치는 의원이 있음.)
▲김 총무=더 이상 얘기할 것이 없으면 의장실에 간부들이 모여 몇 가지 안을 강구한 후에 다시 의총을 소집하겠다.(하오7시55분)
공화·유정의원들이 의총을 열어 대책을 강구하는 동안 김영삼 총재 등 30여명의 신민당의원들은 의석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여당 의총 결과를 기다렸고, 김형일 총무와 이민우 의원 등은 의장실을 찾아가 정일권 의장과 김진만 부의장에게 속개를 요구. 그러나 정 의장은 『의총에서 결론이 나면 총무단과 얘기하겠다』며 굳은 표정.
여당 간부회의에서 김 의원에 대해 제명 결정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하오9시50분 신민당은 145호실에서 긴급 의총을 소집, 귀가했다가 급히 나온 이충환·정해영·이택돈·오세응·신상우 의원 등도 참석했다.
▲김 총무=그 사람들은 이번 국회에서의 유신 체제 확립 제방이 무너졌다면서 공개 사과는 안된다고 제명이란 강경 조치 원칙을 세웠다.
유신 정립이 안되면 국회 존치의 이유가 없고, 국회 해산도 불사한다는 얘기다.

<김 총리, 저녁 식사 않고 대기>(이때 많은 의원들이 『이런 국회 있을 필요 없다. 해산하라고 그래』라고 고함.)
▲송원영 의원=지금 당장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 나는 제명 대상이 된 적이 있지만 헌법사항이고 재적 3분의2이상 찬성이 있어야하므로 그리 쉽게 되지는 않는다.
▲김영삼 총재=오늘 강경한 성명을 내어 우리의 비장한 결의를 보이자.
▲이용희 의원=오늘 의원 총회를 연 이상 김 의원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우리의 비장한 결의를 표명해야 한다.
▲김명윤 의원=동감이다.
▲유치송 사무총장=냉철해야 한다. 유정회가 임기가 다돼 설치는데 우리는 그래서는 안된다. 강경한 대책을 세우더라도 내일 다시 의논하자.
▲이택돈 의원=오늘 김 의원의 발언은 우리 신민당의원 전체의 발언이며, 우리의 총의 라는 것을 결의해야 한다.
▲김원만 의원=김 의원이 제명되면 우리도 같은 운명이 되도록 행동해야 하고 일치된 동일 보조를 취하도록 결의해야 한다(이때 대부분의 의원들이 동감표시).
▲김형일 총무=우리 신민당의 비장한 결의가 만장일치로 통과됐음을 선포한다.
국회 회의장에서 열린 여당간부회의에는 정일권 국회 의장·김진만 부의장과 공화·유정회 간부·국회 상임 위원장 등 30여명이 참석했고 김옥선 의원의 발언녹음을 다시 틀어가면서 대책을 숙의
조금 전 여당 의원 총회에서 비교적 신중론을 폈던 이효상 공화당 의장서리·백남억 상임고문까지도 이 모임에서는 초 강경 발언을 했다.
백 총재 고문은 간부 회의에서 『김 의원을 불러 발언을 취소시키고 사과를 받아야 되잖겠느냐』는 말이 나오자 『그 사람이 취소할 사람도 아니겠지만 지금 와서 취소 사과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분명한 것은 이 단계에서는 국회가 안 된다는 것이며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모레부터 국회에 안나오겠다』고 했다.
『김 의원의 발언은 유신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기 때문에 묵과할 수 없다. 유신이 정착할 때까지 몇 차례 선거를 다시 하더라도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한다』는 것이 간부들의 공동적인 의견. 반공법에 저촉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제명하려고 할 때 야당이 동원 거부나 총 사퇴로 대응할지 모른다는 것까지 분석했다.
회의 도중 김용태 공화당 총무는 약30m 떨어져 있는 총리 방으로 김종필 총리를 찾아가 여당 측 견해를 전달. 김 총리는 저녁 식사를 거른 채 기다리다 간부 회의와 공화·유정의 2차 의원 총회 후 박경원 내무·황산덕 법무·유기춘 문교장관 등과 함께 국회 문을 나섰다.
두 번째 의총이 끝난 후 다른 여당의원들은 모두 귀가했으나 법사위원들만은 3층의 법사위 원장실로 모두 집합했다.
8명의 여당소속 법사 위원 중 박찬(공화)·황창주(유정)의원이 귀향 또는 출타 중이어서 대구에 가 있는 박 의원에게는 급히 상경토록 지시하고 시내에 출타 중인 석 의원을 긴급 수배, 약30분 후에 합류.
장영정 위원장을 기다리는 동안 한태연 의원(유정)은 『야당 태도 여하에 따라서는 국회가 해산될 것』이라고 했고, 서병균 의원(유정)은 『우리야 국회가 해산돼도 5개월밖에 안 남아 한이 없지만 공화당이 문제』라고 말하기도.
이도환 의원은 『김옥선이 하나로 왜 국회를 해산하느냐』면서『여당 단독 국회를 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
황 의원의 뒤늦은 도착으로 회의 정족수는 간신히 채웠으나 장 위원장이 밤11시께 간부들과의 협의를 끝내고 와서 잠시 간담회만을 한 뒤 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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