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재는 불필요한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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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른바 부교재 시비로 말미암아 지난 8월 전남 교위산하 60여 개교의 교장·교감들이 인사 조치된 뒤를 이어 이번에는 다시 서울시내의 여러 초·중·고교가 된서리를 맞을 모양이다.
부교재의 강매나 알선에 따른「커미션」수수나 이에 관련된 출판사 측의 폭리 행위 등 오래된 학원 부조리를 없애기 위해 감사관청이나 사정기관이「메스」를 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사안이 교육기관 전체의 명예와 관련된 것일뿐더러, 부교재의 공과는 순전히 교육적 차원에서만 판정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과 같은 감사에는 극도의 신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리 지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관의 감사라고 하여 만의 하나라도 교장이나 교직원을 피의자 취급하듯 마구 다루거나 조사중인 사항을 사전공개 함으로써 학원전체의 명예를 손상케 한다든지 또는 학생들 앞에서 교사의 위신을 손상케 하는 사례가 있다면 이는 국가적 견지에서 결코 현명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옥석을 가리지 않은 채 이른바 부교재의 사용 자체를 무조건 죄악시하려는 듯한 방침이나 태도는 비판을 받아야 마땅할 줄로 안다. 그것은 공부하려는 학생들의 열의를 저 상케 하고, 보다 좋은 교육효과를 올리기 위해 자율적으로 행동해야 할 교사 고유의 기능을 제3자가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월권이기 때문이다.
참고서나 부교재를 가지고 공부하겠다는 학생들의 의사나 교사들의 지도를 죄악시하려는 정책은 용인될 수 없다.
더군다나 교과서 자체의 부실과 두 찬이 자주 지적되고 있을 뿐 아니라, 60명 또는 90명의 과밀학급에서 변변한 교육용 보조기재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이 나라 전반적인 교육환경을 고려할 때, 초등학교 과정에서의 전과지도서나 도감, 또는 중-고교 교과과정에서의 각 교과별 학습참고서는 어느 의미에서는 필수 불가결한 학습보조자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정책은 이들 부교재·학습참고서 등의 사용을 무조건 금지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하면 정선되고 질적으로 세련된 학습자료를 적정한 가격으로 더 많이 공급할 수 있느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 부교재문제가 흔히 학원부조리의 하나로 손꼽히게 된 데에는 물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른바 채택 료의 수수를 에워싸고 교사·업자간에「검은 관계」가 성립, 때로는 부실한 내용의 부교재를 강매하는 비위가 저질러지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학부모의 부담을 가중케 하는 사례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는 그 행위자체를 근절시켜야 할 것이지, 그 때문에 부교재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구더기가 무서워 장 담그는 것을 일체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문교부가 현행 8백여 종의 각급 학교용 각종 참고서·부교재 등을「일절」없애기로 한 방침은 분명히 단견이다. 이들 참고서류의 연간 매상고가 2백억 원대에 달한다 하여 학부모 부담의 과중이 지적되기도 하지만, 이 금액을 전국 8백80여만 명의 초·중·고교생으로 나누면 1인당 년간 2천2백여원, 월 액으로 치면 1백80원 꼴이 된다.
모든 학생들이 월간 이만한 군것질 값을 절약하는 대신 좀 더 공부를 잘하기 위해 학습참고서를 구입했다면 이는 교육적으로나 국민 경제적으로 권장해야 할 일일망정 결코 금지되어야 할 낭비가 될 수 없다.
요는 이른바 부교재문제에 얽힌 부정한 금전수수행위나 비교육적인 강매행위 등을 엄중 단속할 것이지 부교재 자체를 금기하려는 태도는 마땅히 지양돼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특정단체에 대한 재정 보조적 특혜조치의 성격이 짙은 2종의 특정부교재만을 인정하고, 다른 것을 일절 없애겠다는 문교부 방침은 그 자체가 정당성을 잃은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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