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대북괴 압력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최근의 소·중공분쟁과 「모스크바」의 전지구적인 전략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 매우 심상치 않은 징후를 느끼게 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긴장완화의 환상에 사로잡힌 채 동남아에서 물러나고 「헬싱키」에서 축배를 드는 사이에 「크렘린」은 전세계적인 규모에서의 대미 포위망 구축을 약70%나 달성했다는 것이 「업저버」들의 경고다.
「포르투갈」에서 「페르샤」영까지, 인도양에서 서 태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기까지 소련의 군사력은 계속 증강되고 남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동에 있어서의 소련군사전략의 주공목표는 미7함대라 할 수 있다. 만약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해 미7함대만 제약할 수 있다면 소련의 중공포위와 미국포위는 결정적인 승세를 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미·일 안보체제와 일·중공접근도 둔화시킬 수 있으며 일본의 제해·제공권도 박탈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상황을 상정할 때 소련의 야심적인 팽창정책이 유독 극동 한반도의 경우에 있어서만은 예외로 남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적어도 소련이 북괴 남침을 적극 견제할 것이라고 하는 안일한 속단만은 삼가야 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포르투갈」·중동과 더불어 세계의 전략요충의 하나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에 무관심할리 없는 소련으로서는 중공에 앞질러 북괴를 통한 남진책을 적용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소련의 야심적인 남진기도는 최근 소·중공 분쟁의 여러 측면에 간접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중공「인민대표대회」의 부위원장인 담진림은 지난 10일 일단의 일본청년들을 맞은 자리에서 『미·소가 전쟁을 일으킬 위험이 증대되었으며』미국은 「오끼나와」를 반환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련은 아직도 북방 영토를 점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소련은 「헬싱키」에서 평화를 노래하는 무대 뒤에서 전쟁준비에 열중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 말은 결국 소련의 기선으로 극동에서 긴장이 격화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함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소련은 북괴·월맹 등을 상대로 『반미 못지 않게 반중공에 가담해야 하며 중립은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양자택일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련이 북괴에 택일을 요구하기에 이른 이면에는 과연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북괴로 하여금 자신의 대미 포위망과 대중공 포위망에 적극 가담하라는 요구-즉 북괴의 전격제한전을 사주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일부「업저버」들의 독특한 이설이다.
그와 같은 견해에 따른다면 소련은 한강이북에 대한 북괴의 제한된 전격남침을 통해 남북한의 인구「밸런스」를 깨뜨리고 곡창지대를 획득한 직후에 자신의 주도로 새로운「유엔」휴전협정을 성립,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선점하여 미·중공포위망을 완벽하게 매듭지으려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미국의 신고립주의적 정치인들의 개인기피 성향이 계산에 들어 있음도 물론이다.
이와 같은 「크렘린」의 의도를 감지했음인지 「포드」미국대통령은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북괴 남침에 대해 전략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바 있다. 이 말은 따지고 보면 북괴 못지 않게 대소 경고의 성격을 띤 것인지도 모른다. 전략핵무기란 그 성격상 주로 소련과의 관계에서 고려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대미·대중공 전략상 필요에서 나온 소련의 북괴 남침 종용설은 환상적「데탕트」논자들이 생각하듯 그리 허구적인 추리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유세계는 소련의 긴장완화책에 너무 큰 기대를 걸거나, 중공에 비해 소련은 덜 위협적인 존재라는 식의 피상적이고 도식적인 관찰에 습성화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 북괴의 언사가 「혁명」에서 「평화」로 단진동을 반복한다고 해서 좌고 우면 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소·중공 등 그 배후의 열강관계에 대한 냉철한 현실파악에 기초해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수집하여,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을 세워두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