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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만큼 숨 막힌다 … 파리, 차량 격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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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른 아침엔 야외활동을 하지 마라. 늦은 오후에도 바깥출입을 삼가라. 65세 이상이라면 집에 머무르는 게 낫다. 격렬한 운동도 피하라. 운전도 자제하라. 장작을 연료로 쓰는 난로는 피우지 마라. 디젤 자동차는 운전하지 않는 게 좋겠다. 고속도로에선 감속해달라.”

 대기오염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중국 베이징에서나 들어봄 직한 주의보다. 그러나 프랑스 총리실과 환경·보건 당국이 파리와 그 위성도시 주민들에게 한 요청이다. 파리 공기의 질이 기록적 수준으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가 대기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자가용 이용을 자제시키기 위해 지난 주말 파리 일대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행했다. 14일(현지시간) 파리의 하늘이 잿빛 연무로 흐릿하다. [파리 AP=뉴시스]

 실제 지난주부터 파리 어디서나 뚜렷하게 볼 수 있었던 에펠탑이 뿌연 잿빛 연무에 가려 흐릿하게만 보일 뿐이다. 푸르스름해야 할 하늘엔 두툼한 회색 띠가 둘러져 있다. 11일께부터 평균미세먼지(PM10)의 안전 기준치가 80㎍인데 이를 초과하는 일이 계속됐다. 13일 오후부턴 파리 중심부의 대기오염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지역 중 하나인 베이징과 맞먹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안전치의 2 배가 넘는 180㎍을 넘나든 것이다. 다른 오염물질까지 같이 판단하는 공기질지수(AQI)는 14일 오후 185까지 뛰었다. 당일 베이징의 최고 AQI는 155였다. 그날만 봐서는 베이징보다 파리의 공기 질이 더 나쁜 상태였던 것이다. 물론 이후 베이징은 다시 160∼230 사이를 오가고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프랑스 당국은 14일 1단계 조치를 취했다. 일요일인 16일 저녁까지 파리와 위성도시의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행하겠다고 한 것이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는 호소였다.

 15일 오전엔 다소 상태가 개선됐으나 16일 저녁부터 다시 수치가 올라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당국이 2단계 조치를 취했다. 월요일인 17일 홀수차량만 운행토록 한 것이다. 프랑스 당국이 승용차의 격일제 운행 조치를 취한 건 1997년 이후 처음이다. 속도와 난방연료 제한 등 당부도 했고 대중교통 무료 이용 조치도 하루 더 연장했다.

 당국은 17일 대기오염 수준을 보고 이 같은 조치를 연장할지 검토키로 했다. 녹색당 의원들은 오염이 심각한 만큼 이참에 차량 격일제 운행을 시행하자고 촉구했다. 파리 시내로 트럭이 들어오는 것도 일시적으로 제한할 것도 제안했다.

 파리 주변부의 이 같은 대기오염은 역설적으로 좋은 날씨 탓이다. 최근 파리는 평년 기준을 넘는 따뜻한 기온에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밤중엔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따뜻한 공기가 이동을 못 하게 뚜껑을 덮는 듯한 효과가 있었다. 오염된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정책적 요인까지 더해졌다는 게 외신들의 보도다. 프랑스는 60년대부터 디젤 자동차가 공기오염을 덜 유발한다고 판단하고 휘발유 자동차를 대체토록 하는 세금 혜택 등의 유인 정책을 폈다. 그 때문에 디젤 차량이 유독 많아졌다. 그러나 프랑스가 기대한 ‘디젤 엔진이 더 친환경적’이란 건 여전히 가설로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편 프랑스 이웃 벨기에도 대기 중 오염물질 농도를 줄이기 위해 주요 도로의 트럭 최고운행속도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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