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과「프랑스」의 경기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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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이 세계경기회복을 위해 어떤 독자적인 역할도 맡지 않을 것을 분명히 밝힌 것과 때를 같이해서 EC권의 서독·「프랑스」가 거의 동시에 경기자극정책을 발표한 사실은 특히 그 시차와 관련하여 큰 관심을 모을 만하다.
최근 잇달아 열렸던 IMF·UN특별총회 등 국제회의에서 노출되었던 제3세계의 불만은 매우 강력한 것이었는데 선진부국들에 대한 이들의 불만은 대부분 정당한 것이었다.
당면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는데는 두말할 필요 없이 부국들의 주도적 역할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제3세계의 이 같은 요구는 상대적으로 안정도가 낮은 EC 국가들의 희망과도 배치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불황이 최악의 바닥을 벗어나고 있음이 분명한 미·일 등이 확대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국제적 여론은 특히 EC권에서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IMF총회에서 이런 요구에 대해 명백한 거부의사를 표명함으로써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고립주의적 성향을 지속해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자원부국의 강점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이런 입장은 그 동안 눈치만 보아오던 일본의 경기정책을 한 단계 더 보수적으로 물러서게 만들 공산이 적지 않다.
이런 여러 사정이 결국 본질적으로 개방 지향적인 EC의 독자적인 경기정책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 개발도상국 등 국제협조에서 EC제국은 종래에도 미·일보다는 유연한 자세를 견지해봤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국제수지·물가·고용 등 여러 면에서 아직도 많은 불안정 요소를 안고 있는 이들 EC제국이 경기자극 정책을 쓰게 된다면 물가·재정·대외수지 등에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 시킬 가능성도 매우 큰 것이다.
역내무역의 비중이 특히 높은 EC로서는 우선 독·불만의 경기자극만으로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주의 EC장상 회담은 GNP의 2%를 경기대책 비로 지출할 것을 합의한 바 있어 이들 각국은 각기 시차를 두고 미구에 경기자극대책을 채택하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독·불의 경기대책은 모두 재정지출의 확대를 근간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본격적인「리플레」정책으로 평가하기에는 아직도 이를 것이다.
그나마 서독의 경우는 누적된 재정적자 때문에 재정 지출규모가 매우 소폭 적이어서 경기자극 효과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서독 GNP의 0.6%에 불과한 이번 지출은 불황도가 가장 심각한 건설부문의 실업흡수에 약간의 기여가 있을 것으로 기대될 뿐이다.
민간·정부신용의 제약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서독으로서는 국제적인 이자율 인하협정이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한, 당분간 경기자극을 위한 지출을 크게 늘릴 여력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프랑스」는 서독의 3배가 넘는 3백억「프랑」을 투입, 정부사업확대 뿐만 아니라 소비자극책, 설비투자 증가까지 망라한 포괄적인 경기정책을 시도하고있다.
특히 소비수요확대와 재 할인율 인하 등 금융완화조치까지 곁들일 경우 상당한 경제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같은 경기대책이 미·일의 동시적인 협조를 얻지 못할 경우 새로운 국제수지의 애로를 조성할지도 모른다.
결국 불황의 진전이 거의 동시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회복 과정에서도 각국의 조정정책이 상호 연관을 맺는 동시적인 것이 아닐 경우 전반적인 경기회복은 그만큼 늦어질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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