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면·동의 과중한 업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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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선 행정기관의 과중한 업무는 곧장 주민들의 불편으로 전개되는게 보통이다. 따라서 민원처리기관의 격무는 그 기관의 직원들뿐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여간 고통스런 일이 아니다.
며칠전 일선 민원창구에서 기다리다 지친 한 시민의 졸도사건은 이러한 고통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읍·면·동 등 일선 행정기관의 격무는 어제 오늘의 새삼스런 문제가 아니다. 이미 행정의 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일선 동 직원은 3백17개 동사무소에서 모두 4천1백명이 된다. 직원 1명이 2백80여 가구 1천5백 시민의 일을 맡는 셈이다. 이는 서울시의 현재 업무량에 비춘 자체 적정 기준인 직원 1대 시민 1천에 비해 엄청나게 부족한 숫자다. 구조적으로 동 직원이 시간외 근무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금년 들어 민원행정의 하부 이양시책에 따라 많은 업무가 구청에서 동으로 이양돼 일선관서의 업무량은 더욱 많아졌다.
서울시내 동은 각종 지방세 및 공과금 징수·예비군 및 병사업무·연탄 기록장제 등 20여종의 고정업무와 57종의 민원업무를 맡고있다.
최근에는 통·반 조직강화를 위한 호구조사·민방위 편성·주민등록증 갱신 발급 업무까지 겹쳐 격무가 더욱 가중되었다.
게다가 이러한 특수업무는 대개 시한성 업무여서 그 여파가 자연히 대민 관계의 소홀이나 불친절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급행료 풍조가 줄어든 데 따른 민원업무에 대한 공무원들의 소극화 경향과 겹쳐 주민의 불편을 심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주민을 위한 행정을 기하기 위해선 공무원의 윤리성 제고와 함께 사무의 간소화·일선 행정관서의 인원확충·사기진작을 위한 보수체계의 합리적 조정이 시급하다.
최근 민원사무의 간소화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으나 행정사무를 줄일 수 있는 여지는 아직도 상당히 크다. 기본적으로 행정업무의 간소화는 행정이 국민생활에 너무 깊숙이 파고들어 사사건건 관여하려는 풍조를 불식하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하겠다.
더구나 행정의 권위주의·형식주의 풍토가 뿌리박고 있는 우리 같은 사회에선 강한 제동이 없는 한 행정의 영역은 확대경향을 갖는다.
이점 행정이 관여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과감히 행정사무에서 제외하는 결단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것은 행정부패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도 긴요하다.
그렇게 해서도 일선 행정기관의 업무량이 계속 과중할 때는 인원을 늘려서라도 국민에게 불경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인원의 확충은 정규직원을 늘리는 방법도 있으나 업무종류에 따라 그때그때 임시직원이나 주민봉사대를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될 수 있다.
특히 최근같이 일상적 업무라기보다 특수업무가 늘어난 경우는 이러한 임시직 방법이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박봉에 시달리는 동 직원들이 심야근무를 하는 경우에도 아무런 특근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러한 불 합리가 결국 국민들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무원이 대민 봉사 자세를 갖추는 일이다. 주민의 편에서 행정을 수행하려는 자세가 갖추어질 때라야 일선행정의 여러 문제는 합리적으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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