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해한 일본의 대 북괴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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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괴에 의한 일본어선 「쇼오세이마루」(송생환)의 납치이후 일본 조야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석연치가 못하다.
지난 2일 「쇼오세이마루」피격 나포 이후 일본 정부 주변에서는 북괴와 통상 대표부 설치 및 민간어업 협정체결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당국은 정치적 목적의 북괴 왕래를 불허하던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구차스런 명분을 붙여 북괴정권 수립 27주년 행사에 참석하는 조총련 간부들의 재 입국도 허가했다.
일부 일본 언론은 이 사건에 대한 분노보다도 일·북괴 관계의 미 정립을 이 사건의 원인으로 부각시키는데 더욱 열중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비무장 어선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선원 4명을 살상한 이번 사건은 경위야 여하간에 비인도적 만행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작금 일본 조야의 전에 없이 은근한 태도는 도대체 어찌된 것일까.
납치된 어부와 어선을 구하기 위해 조심스런 태도를 취한다면 수긍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현재 운위되는 북괴와의 통상 대표부 설치나 어업협정 체결문제가 사건해결 방안이라면 문제는 복잡하다. 문제 해결과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 반 공식적인 대 북괴 관계 정립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북괴와의 통상 대표부나 어업 협정의 문제는 결국 남·북한 등거리 외교로의 이행과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우리는 일본 안에 남북한 등거리 외교를 추구하는 세력이 상당히 도사리고 있다는 사심을 잘 알고 있다. 현재 표면상 「쇼오세이마루」사건 해결에 앞장서 있는 측이 대개 이러한 세력들인 것이라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이번 사건을 의도적으로 일·북괴 관계 발전이란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흔적이 상당히 눈에 뛴다.
피랍 어부와 어선 송환문제가 인도적 차원에서 하루빨리 해결되어야겠다는데는 우리의 뜻도 전적으로 같다.
다만 교섭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북괴와 일본 좌익이 노리는 일·북괴의 정치적 접촉획책에 놀아나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하기야 한반도를 보는 일본의 눈이 우리와 똑같을 순 없나. 일본은 일본 나름의 판단과 이해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이 북괴와의 접근을 무한정 자제하리라 기대할 수도 기대하기도 힘들는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북괴의 비인도적 잔학행위를 계기로 이러한 접근이 이뤄진다면 결과적으로 북괴의 만행을 조장하는 것밖에는 안될 것이다. 이는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결코 보탬이 되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일본이 경제 대국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처지다. 그만큼 일본도 이젠 외교적 행동에 있어 기본 청사진을 밝히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갖출 때가 되었다. 「아시아」의 긴장완화와 평화구조 수립에 대한 장기적 청사진 없이 지금까지와 같이 그때 그때의 시세와 사건에만 편승해선 인국으로서의 신뢰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쇼오세이마루」사건 같은 것을 핑계삼아 그들의 대 북괴 기본입장에 사소한 변화라도 있어선 안되겠다. 그것이 설사 비공식적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라 해도 한국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선포한 한·일 기본조약 정신에 배치되는 행동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일본의 어떠한 대 북괴 접근 모색도 한국민의 대일 감정에 파탄을 가져오리란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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