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글 안 쓰는 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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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작품발표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 문단주도권 쟁탈의 한 수단으로 등장할 만큼 우리나라 문인들에게 작품을 발표하는 문제는 심각한 것이다. 각종 간행물을 통해 1년에 1편이상의 작품을 발포하는 문인이 4백명 정도라고 추산한다면 전체 문인 1천2백명의 67%에 해당하는 8백명 가량의 문인이 「글 안 쓰는 문인」이라는 계산이다. 물론 이들 8백여명이 작품발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면 획득을 위한 경쟁은 계속 치열해지고 있다. 이처럼 작품을 발표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한국문학이 그들의 작품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햇동안 단1편의 작품도 발표하지 않는 문인들이 있다.
소설의 김팔봉 최정희 장덕조 한무숙 김성한 선우휘 손창섭 장용학 김광식 전광용 최인훈 김승옥씨 등과 시의 주요한 김광균 김경린 장서언 조야 신동문 함윤수씨 등이 그들이다. 특히 이들은 각기 한시대의 한국 문학을 대표할 수 있었던 문인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집필 중단은 우리나라 문단을, 혹은 독자를 궁금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문학활동 중단의 양상은 몇가지 사례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신체적인 노쇠 현상으로 글을 쓸만한 기력이 없는 경우인데 김팔봉·이희승씨 등 원로 문인의 대부분이 이 경우에 속한다.
둘째는 글을 계속 쓰되 발표를 하지 않거나 「장르」를 옮겨 쓰는 경우로서 이미 대작 장편과 여러 편의 단편을 써 놓았다는 장용학씨와 소설은 쓰지 않고 「시나리오」만을 쓰고 있는 김승옥씨 등이 이 경우에 속한다. 세째는 현재의 직업에 전념하다보니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학 활동을 할만한 여유가 없는 경우로서 김광균·김경린·김성한·선우휘씨 등이 이 경우에 속한다.
네째는 박남수·손창섭·최인훈씨 등과 같이 거주지를 외국으로 택한 경우인데 고원·마종기·박상강씨 등이 외국에서도 계속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외국 거주가 창작중단의 합리적 변명은 될 수 없을 듯하다.
그러나 문학이라는 것이 본질적인 충동의 소산이라면 이상과 같은 몇 가지 이유는 다만 피상적인 것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점에서 70년대에 들어 창작을 중단, 74년 일본으로 떠나면서 『이제까지의 나의 소설 모두를 버리고 싶다. 안 쓴 것으로 하고 싶다. 철든 다음에 글을 쓰려니까 글쓰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손창섭씨나 10년전부터 시작을 중단, 『50세가 넘어야 마음에 드는 시가 쓰여질 것 같다』는 신동문씨의 경우가 더욱 절실한 이유로서 전달된다.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작품을 쓰지 않다가 현재 지방신문에 역사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김동리씨는 또 다른 「케이스」. 『욕심을 내서 좋은 단편을 쓰려고 시도해 보곤 하지만 다룰만한 주제는 거의 모두 다뤘기 때문에 벽에 부닥친다』는 것이다.
창간 이후 2년 동안 매달 이들 문인들에게 원고 청탁을 했으나 한번도 작품을 받은 적이 없다는 『한국 문학』편집장 이문구씨는 『원고청탁』을 받고 나서 대개 써 보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것을 보면 의도적으로 절필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이들이 원고를 써 오는 경우 원고료와 지면배정 등에 있어서 특별히 우대할 계획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어떻게 해서든지 이들이 계속해서 문학 활동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학 평론가 김윤식씨는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비평 작업이 하나의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에 의하면 7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 문단의 비평 활동이 일부 젊은 문인들에게만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반드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며 가령 서기원·오상원·송병수씨 등이 몇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작품을 발표했을 때 이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이 거의 없었음은 결과적으로 집필 의욕을 둔화시키는 것이라는 것이다. <정규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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