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산 교훈을 찾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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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의 역사적 교회는 너무도 전통과 교권과 유풍에만 집착되어 주님의 마음과 뜻은 너무 가볍게 생각해 왔다. 어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속죄의 교리에 전념하여 예수자신의 마음과 뜻은 잊고 있다. 또 어떤 교회는 주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감사의 제사」를 드리는데 더 관심을 가짐으로써 예수의 구원행위를 좀더 인간적 의미로 생각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그 인간 고난을 형식적 교리로 바꾸어놓음으로써 예수「그리스도」자신의 현실적 고난의 의미를 약화시켰다.
결국 이러한 비인간화 과정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값싼 것이 되었고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아무런 생각 없이도 세례를 받거나 기도에 참석함으로써 구원의 은혜는 이미 주어졌다고 믿어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와 교회생활에 대하여 새롭게 강조해야 할 것은 구원의 인간적인 의미다. 이러한 의미를 밝히고 증거하는 분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다.
또 그가 우리 인간의 구주가 되신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가 인간이었다는데 있다. 주님의 구원은 우리의 인간 경험을 통해 주어졌다. 우리는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난 상황을 통해 풍족함과 시원함의 기분을 안다. 슬픈 인간 경험을 통해 슬픔 없는 인생의 기분을 깨닫게 되고 또 불행한 현실을 통해 불행 없는 행복의 의미를 알게 된다.
예수「그리스도」는 이러한 인간 극한 상황들을 몸소 경험했고. 그 경험의 의미를 우리에게 성서를 통해 말해 주고 있다. 그의 말씀과 그의 손과 발은 또 그 인간의 깊은 요청들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이었다. 역사상 예수「그리스도」만큼 굶주림을 경험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 그분만큼 목마름과 고통을 당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슬픈 일, 억울한 일, 또 외로운 인생, 그 모든 인간 모습이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보여졌고, 성서의 이야기도 다름 아닌 그 이야기였다.
이러한 인생 길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배고픈 군중과 함께 굶주렸고 또 외롭고 슬픈 인간들과 함께 그 외로움과 슬픔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가장 처참한 최후를 끝내야 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최후의 고통 중에서도 불굴의 신앙과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주님은 인간의 현실에서 인간의 경험을 통해 구원의 의미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의 이 깊고 밝은 인간성을 망각했다. 그 대신 교회 안에 남은 것은 화석화한 형식이었고 무의미한 전통의 반복이다. 이렇게 되면 주님의 아픔이나 슬픔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인간 없는 기계주의적 사고 방법과 비인격적 동작만으로 구원의 연극이 연출될 뿐이다. 그리고 주님의 그 생동하는 인간 모습과 호흡은 영영 교회 안 에서 보여지지 않게 된다.
신자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으면서 주님의 마음과 뜻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태의 교회는 살아 움직이는 교회일 수가 없다.
한국 교회는 지금 대 내외적으로 많이 발전되어 간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발전의 교회의 참된 모습인 예수「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을 용케 간직하고 그것을 용기 있게 전하는 것이 아니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교회는 무의미한 과거를 되풀이하거나 회합과 사업계획과 법규 따위의 문제를 위해 있는 단체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교회 자체의 내용 즉 주님의 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곳이다. 교회의 기도와 온갖 활동이 모두「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우리는 교회의 장식물이 낡거나 교회의 신자수가 줄어들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도 예수님의 참된 마음과 뜻 즉 그의 참된 인간 모습과 그의 뜻이 사라질까 염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천환<성공회 서울 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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