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 외교」의 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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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한국의「리마」비동맹회의 대책은 정보 미흡관 일부 회원국 외상들의 막연한 약속만을 지나치게 믿은 주먹구구식이었다는 후평들-.

<정보 없는 주먹구구식 작전>
전체 외상 회담가 25일 하오11시45분(현지시간) 한국 문제를 다루자마자 북괴 지지「그룹」은 조정위가 북괴가입 신청을 만장일치로 권고했다고 사회자가 보고하는 것을 요란한 박수로 받아 가지고는 그것을 북괴 가입 신청 승인으로 간주해 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김동조 장관은 한국 대표단의 지휘본부에서 자정이 가까울 무렵까지도 『포문은 열렸다. 진군 나팔은 불었다. 시비가 붙은 이상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라고 장담하고 있었다. 회의장의「진상」을 즉각 한국 대표단에 알리는 대표 한사람 확보하지 않은 채 작전이 수행된 것이다.

<북괴는 날치기로 가입 돼>
북괴 지지「그룹」은 몇 차례의 작전 회의를 거쳐 개회 벽두 사회자의 이러저러한 보고가 있으면 박수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자는 음모를 꾸며놓고 있었지만 한국은 그런 것을 까맣게 몰랐다. 한국을 지지하는「그룹」역시 그런 정보를 입수하지 못했다.
북괴 지지 「그룹」은 북괴 가입을 일단 기정사실로 만들어 놓고 한국의 가입 시도를 봉쇄하기로 한 것이다. 북괴의 날치기 가입을 보고 한국에도 같은 대우를 해야한다고 「사우디아라비아」「리베리아」.그리고「가봉」같은 나라 대표가 항의 발언을 잇따라 하자 북괴지지「그룹」은 각본대로 월남「빈」여 외상이 퇴장 위협을 하고 거기에 놀란 사회자는 북괴의 가입, 한국 가입의 부결을 확정판결 하기에 이른 것이다.

<안 들린 아르헨티나 탱고>
한국이 철석같이 믿던 「인도네시아」인도「아르헨티나」「말레이지아」등이 끝내 발언하지 않은 것은 한국 대표단엔 큰 충격이었다.
북괴 가입이 박수로 승인된 지 한 시간 뒤에 비로소「날치기 작전」에 패배한 사실을 알아차린 김 장관은 짜증 섞인 음성으로 『어째서「아시아」「라틴 아메리카」「그룹」이 발언을 안한 거야. 「아르헨티나·탱고」는 어떻게 됐어』라고 해당지역 주재 대사들에게 역정을 내기 시작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지금 나의 귀에는「아르헨티나」의「탱고」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고 하던 김동성 대사도 고개를 떨굴 뿐이고「인도네시아」주재 이재설 대사, 「말레이지아」주재 전양진 대사도 그저 민망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장기적인 관계 확대라고>
「리마」회의는 김동조 외교의 한계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고도 이긴 「게임」』이라고 김 장관은 강변한다.
김 장관은「유엔」가입신청과 「리마」회의 작전은 패배가 예상되지만 불가피한 싸움이었다고 했다. 김 장관은 한국이 비동맹회의에 가입신청을 하지 않았으면 비동맹 회원국들은 한국이 이 기구를 상대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할 것이고 비동맹 회의 가입 신청을 놓고 한국이 벌인 활동은「유엔」의 전초전으로 효과적이며 비동맹 회의 회원국들과의 장기적인 관계확대·개선에 도움이 된다고「리마」회의 참가를 그런대로 정당화하려고 애
쓰고 있다.
그러나 「리마」에서 한국이 당한 패배는 구체적인 반면 패배의 대가는 구체성이 없다. 북괴 지지「그룹」은 회의과정을 통해 결속을 다졌고 그 여세를「유엔」까지 몰고 갈지도 모른다.
북괴는「뉴스」의 각광을 받지 않고 조용히 비동맹회의에 가입할 것을 한국측 의 요란스런 작전 때문에 요란스럽게 가입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평가도 있다.
결국 이번「리마」작전은 김동조「스타일」이 아닌 조용한 작전이었어야 했을 것이라는게 「업저버」들의 얘기다.

<「하비브」차관보의 농담>
「리마」를 떠나던 날 김동조 외무장관은『한국이 가입됐어도 야단일 뻔했다』고 했다.
김 장관은 패배를 자위하는 의미로 그런 말을 했지만 월맹·월남·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판을 치는 기구라는 점에서, 그리고 월남 외상「빈」여인의 퇴장위협 한마디로 회의장 공기가 바뀌는 정도의 기구라는 점에서 한국이 외무장관과 20명 대표단의 위신을 걸만한 무대는 아니었다는 뜻인 듯 하다.
동남「아시아」에 주재하는 어느 한국대사는「하비브」미 국무차관보가 『한국은 언제부터 비동맹을 신봉하게 됐는가』라고 가시 돋친 농담을 하더라고 전했다.
「리마」에서「김동조 외교」가 갈지자걸음을 걷고 있을 때 서울에서는「슐레진저」미 국방 장관을 맞아 한·미 안보회의가 열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김 외무가 주장하는 것만큼 비동맹사의 가입 시도가 그토록 요란스럽게 북을 치며 나설 일이었는지 의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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