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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의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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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인 현재보다 미래에 기대를 걸며 불 합리보다는 정도에 신뢰를 갖는 건실성을 갖고 있다.
비록 현실은 불만스럽지만 장래에 향상·발전을 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그것은 20대든 50대든 나이에 관계없는 경향이다.
광복 30주년을 기념해서 본사가 실시한 『한국인의 의식』 조사는 이러한 미래 지향의 희망과 세대 격차를 느낄 수 없는 국민 의식을 두드러지게 나타낸 점에서 주목된다.

<미래 지향적 낙천성>
현재의 생활에 대해서 33%만이 만족을 표하고 있는 국민들 중 67%가 장차의 생활은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고있다고 이 조사는 밝힌다.
올해 들어 「전쟁」과 「물가」와 「부정 부패」와 「정치」에 관해 가장 많이 화제로 삼았던 국민들이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는 인사말에서 『무엇인가 불안한 것』을 60%나 느끼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오늘의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불공평」「위기」「혼란」「부패」 등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과반수를 훨씬 넘기 때문이다.
물론 「번영」이나 「희망」「평화」를 이야기한 사람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불공평한 사회, 부패한 사회로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현실 부정의 의식이 그처럼 심각한 상황 아래서는 참다운 기대나 희망이 있을리 없고, 개인이나 가족이 공동 사회에 충성할 여지가 매우 적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만한 사람이 조금밖에 없거나 아주 드물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상대는 「부모·자식」 「형제·자매」 등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른바 「이웃 사촌」으로 불리던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적 「우리」가 이제 없어졌거나, 아니면 이미 믿을만한 대상이 못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호 불신의 사회 풍토에서 마음의 평화가 있을리 없다. 오직 개인과 개인의 욕구 추구만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본능적인 이기 추구의 생존만이 있을 뿐 인간적인 사랑의 관계가 존재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 불신의 풍조>
이 같은 경향을 현대 산업 사회의 한 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투철한 개인주의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가족 중심의 전통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유야 어떻든 우리 사회에 가득 찬 인간 불신 풍조의 위험성은 간과되어서는 아니 되겠다.
「나」만이 있고 「우리」는 아랑곳없는 당대 한국인 의식의 옹색함은 비극적인 것이다.「나」를 위주로 한 자기 중심적 사고의 정형이 이미 고착된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것이다.
그런 사고 형태는 좁게는 개인의 아집에 머무르고 확대된 대야 기껏 가족에 한정되는 것이다.
절실한 문제로 관심을 갖는 것이 건강 문제이며 자녀의 교육이며 가족의 장래 안전이 되는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희망을 보인 국민들은 차라리 바람직한 인간상일 수도 있다.
「개인」 의식에 매몰된 안타까움이 있으나 이들은 최소한 가족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사랑을 나타내면서 수신제가나마 성실 하려는 사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허튼 욕심이나 소 영웅적 독선에 빠져 사회를 불행하게 하는 부류에 비해서 평범하나 아름다운 소시민의 생활을 터득한 이들의 심정은 값진 것이기도 하다.
다만 개인주의·가족주의의 편향이 사회의 정의, 인간의 공동선을 포기하고 본능적 삶에 휩쓸리는 시정인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고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고식적 일체감의 불식>
어떻든 이런 이기적 경향에 20대의 젊은이나 50대의 장년은 차이가 없었다. 통일 문제에 대한 감각, 사회를 보는 눈, 남북 대화에 대한 평가, 결혼관 등에서 세대 차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이들은 통일을 우리 세대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며 결혼 생활에서 부부의 이해심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는 점에 한결같다.
굳이 차이를 찾는다면 장래에 대해 20대가 많이 나아질 것을 기대한데 대해 50대는 별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 것, 젊은 층이 여행·사회적 지위 향상·여권 신장·성 문제에 약간 대담성을 보인데 비해 돈벌이·토지 투기 등에 노장층의 관심이 강하게 나타난 것 등이다. 또 20대가 50대보다 더 심한 반일 감정을 나타낸 것,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신념에 더 반응을 보인 것 등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두 세대의 의식 격차는 근본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처럼 세대 격차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국민적 일체감이 유지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에선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일면 한나라의 젊은 세대가 그들의 구세대와 다를 바 없는 의식에 싸여 현실 영합적이고 고식적인 경우 그것도 작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낡은 감각을 가진 새 세대에게서 새롭고 나온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이상을>
이 같이 당대 한국인 의식의 실체를 성찰할 때 이제 광복 30주년의 시점에 선 우리로서는 냉정히 오늘의 정신 상황을 주시 반성할 필요를 느낀다.
이웃 사랑과 민족적인 연대 의식이 결핍된 오늘의 정신 상황은 분명히 우리 국가 사회의 장래에 큰 문제성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자아와 공동선을 몰각한 이기적인 개인 편집과 「마이·홈」주의는 현실 부정만을 지속시킬 뿐 미래의 번영을 지향할 희망을 갖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세대간의 격차가 크지 않다 해도 정체와 안일에 빠진 젊은 세대와의 일체감은 무의미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많은 국민들이 우리 젊은이들로 하여금 사명감을 가지며 이상을 포기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현실 부정과 소시민적 이익 생활에 안주하면서도 많은 국민들이 「이상」을 사랑하고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참다운 일체감을 유지시킬 기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지는 국민들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라 하겠다. 한국인의 의식은 흔히 오해되듯이 퇴영적이고 회고적인 것이 아니라 그 옛날 미래 불인 미륵에 대한 신앙이 융성했던 것처럼 여전히 미래 지향적이며 희망에 가득찬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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