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속으로] 오늘의 논점 - 이석기 내란음모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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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2014년 2월 18일자 34면>
민주 질서 강조한 ‘이석기 내란 음모’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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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내란음모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이 의원 등이 가진 회합을 내란 모의 과정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어야 할 때다.

 어제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 김정운)는 이 의원에게 적용된 내란음모·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또 이 의원과 함께 기소된 당직자 등 6명에 대해 징역 4~7년씩을 선고했다. 최대 쟁점이었던 내란음모 혐의와 관련해 재판부는 “2013년 5월 두 차례의 회합은 RO(혁명조직) 조직원들의 회합”이라며 RO의 실체와 국헌문란의 목적성을 인정한 뒤 “이 피고인이 총책”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북한이 적화통일의 야욕을 거두지 않고 휴전 상태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으므로 그 내란 실행의 합의에 실질적 위험성이 상당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민주주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의원 등이 체제 변혁을 위해 사회혼란을 획책했다”는 검찰 기소 내용을 받아들인 것이다. 판결문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도 정부나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 내지 지지를 넘어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내용까지 무제한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제시했다. 특히 이 의원에 대해선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대한민국과 우리 사회가 특별사면과 복권을 통해 두 차례에 걸쳐 관용을 베풀어 주었음에도 다시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선고 직후 통합진보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명백한 정치재판이자 사법살인”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재판 결과를 놓고 정치적 시비를 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동안 재판 진행 절차에 하자가 없었다면 법원의 판결을 일단 존중하는 게 옳다. 이 의원 자신도 지난 3일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통해 “재판을 공평하게 이끌어 준 데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결론이 기대에 어긋난다고 해서 판결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헌법이 3심제를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판결 결과에 불만이 있다면 항소 절차를 통해 바로잡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욱이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이 진행 중인 만큼 법리와 증거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번 재판은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직결된 사안이다. 모든 사법 절차가 끝날 때까지 한 점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치우침 없이 재판이 진행되길 기대한다. 재판이 이념이나 감정적 대립으로 점철되기보다는 민주주의 질서의 건전성을 높이고 공동체의 분열을 막는, 성숙한 과정이 될 수 있게끔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겨레<2014년 2월 18일자 35면>
법 논리에서 벗어난 ‘이석기 사건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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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등 사건에서 유죄 판결과 함께 징역 12~4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아르오(RO)’가 내란음모의 주체라는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아르오 자체가 국가정보원과 제보자의 추측으로 만든 소설이라고 주장해온 이 의원과 변호인단의 주장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의 유죄 판결이 법리적 측면에서도 그렇거니와 그간의 사건 전개 과정에 비춰봐도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와중에 터진 이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로서는 공안당국과 정권의 국면 회피용 ‘희생양 만들기’에 법원이 들러리를 선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질 법하다.

 내란 음모 및 선동죄에 대한 유죄 판단은 우선 법리적으로 무리한 측면이 있다. 재판부는 아르오가 주체사상을 수용한 비밀 지하혁명조직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 아래 내란 수준의 모의를 했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 언론에 이미 공개됐듯이 이들의 모임에서 녹취된 속기록에 “유조창 탱크 폭파”나 “철탑 파괴” 또는 “후방 교란” 등 황당하다고 할 정도의 표현이 다수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 제보자 이아무개씨를 비롯한 3명의 대화를 담은 별도 녹취록에는 사상 학습을 진행하면서 북한의 3대 세습을 용인하는 듯한 표현도 등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들에게 내란 음모나 선동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형법 87조에는 내란죄에 대해 ‘국토의 참절 또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로 규정하고 있다.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폭동’이어야 할 뿐 아니라 일반적 추상적 합의를 넘는 구체적 모의도 있어야 한다. 판결문에서 “음모가 계획의 세부에까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밝혔듯이 이들이 과연 이런 정도의 구체적인 내란 계획을 세웠는지, 실제 그럴 실행 능력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장난감총’ 운운하고, 어린아이 우는 소리까지 들리는 회합이 내란 음모를 위한 조직 모임이라는 게 합당한 판단인지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2010년 제보를 받고 지난해 7월까지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규정해 감청영장을 받아오던 국정원이 갑자기 8월에 내란음모 사건으로 둔갑시킨 것은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국기문란의 범죄행위에 대한 반발로 시국선언과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 국정원 자체가 위기에 몰리자 사건을 과대포장해서 내놓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녹취록을 미리 언론에 흘려 여론재판을 시도한 것으로 미뤄봐도 이런 정치적 의도는 읽을 수 있다.

이 사건에 앞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무리하게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정부가 법무부를 통해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등, 이 사건을 전후해 정권 차원의 ‘종북몰이’가 기승을 부렸다는 것은 이 사건의 정치성을 잘 말해준다.

 결국 이런 정치적 사건에 법원이 엄격한 법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공안당국의 여론몰이에 휘둘린 게 아닌지 유감스럽다.

[논리 vs 논리] 한겨레 “이석기 정치적 판결” 중앙 “절차상 문제 없어”

법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및 선동, 그리고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지난 2월 17일 수원지법 형사12부는 이 의원 등이 가진 회합을 내란 모의 과정으로 판단하고, RO가 내란음모의 주체라는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아직 1심 판결이지만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이후 34년 만에 내려진 내란음모 유죄 판결이란 점에서 커다란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이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던 당시부터 ‘무리한 수사’와 ‘정당한 법 집행’이란 서로 다른 시각이 엇갈리면서 주목을 끌었던 사건이었던 만큼 유죄 판결에 대한 평가 또한 다르게 나타나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논쟁의 핵심은 내란음모 혐의에 대한 법리적 논쟁과 함께 재판의 정치성에 대한 시각차에 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은 분명한 시각차를 보인다. 중앙일보는 법원 결정에 대한 논란 자체를 비판하면서 판결에 의미를 부여하는 긍정적인 입장이고, 한겨레는 무리한 법리 적용을 한 정치적 판결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중앙일보는 ‘민주주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민주적 질서 보호에 무게를 싣고 있다. 선고 직후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일부 세력의 ‘정치재판이자 사법살인’이란 주장에 대해서는 ‘재판 결과를 놓고 정치적 시비를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일축함으로써 법원 판결을 존중하는 절차적 정의를 중시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한겨레는 이번 판결이 ‘법리적 측면에서나 그간의 사건 전개 과정에 비춰봐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과 함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와중에 터진 점 등을 거론한다. 정권의 국면 회피용 ‘희생양 만들기’에 법원이 들러리를 선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그동안 재판 진행 절차에 하자가 없었다면 일단 존중하는 게 옳다는 전제하에서 결론이 기대에 어긋난다고 해서 판결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는 일 자체를 문제로 보고 있다. 즉 판결 내용에 대한 법리적 해석이나 평가보다는 법원 판결의 절대성이라는 재판의 절차적 합법성에 초점을 맞추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한겨레는 재판부의 판결 내용을 중심으로 무리한 법 적용임을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다. 녹취된 속기록에 황당할 정도의 과한 표현이 다수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내란 음모나 선동죄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회합에서의 발언 내용 등이 내란을 위한 모의의 구체성과 실행력을 입증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중앙일보는 법원 판결에 대한 저항이나 불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로, 판결에 불만이 있을 때는 오로지 상급심에 항소하는 절차를 통해서만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헌법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이 진행 중인 만큼 법리와 증거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주문까지 덧붙이고 있다. 반면에 한겨레는 이번 이 의원 재판과 같이 정치적 사건에 법원이 엄격한 법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공안정국의 여론몰이에 휘둘린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2010년 제보를 받고 지난해 7월까지도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으로 규정했던 국정원이 바로 다음 달인 8월에 내란음모 사건으로 둔갑시킨 것 자체가 바로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는 주장이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두 신문 모두 이번 재판이 정치적으로 휘둘리지 말고 엄격한 법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법원의 1심 판결 결과를 평가하는 관점과 시각에 있어서는 상당한 온도 차를 보인다. 중앙일보는 사법 절차상 문제가 없는 판결이었다는 점을 강조한 반면, 한겨레는 법리 적용의 문제와 함께 법원의 정치적 판결이 유감스럽다는 입장이다.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다음 주 논점 주택 임대차 선진화 방안

3월 18일자에는 주택 임대차 선진화 방안에 대한 중앙일보·한겨레의 사설과 류대성 용인 흥덕고 국어교사의 비교·분석 글이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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