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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증거 조작 지시 혐의 국정원 직원 넷 출국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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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이 진상조사 착수 18일 만에 수사로 전환됐다. 이 사건의 결정적 증거인 문서를 중국에서 입수해 국가정보원에 전달한 중국 국적 탈북자 김모(61)씨가 5일 자살을 시도하며 남긴 유서에서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문서를 위조했다고 주장한 사실이 공개돼서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7일 “모든 의혹을 명백히 밝히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문서 위조 의혹에 관련된 국정원 직원 4명을 출국 금지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문서 조작을 지시했거나 조작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했을 경우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형사처벌할 수 있다. 국보법 12조(무고·날조죄)는 간첩죄 및 북한 잠입·탈출 혐의와 관련해 증거를 날조·인멸·은닉한 자는 간첩죄(최고 사형 또는 7년 이상), 잠입·탈출죄(사형 또는 5년 이상)와 같은 형에 처하도록 돼 있다. 간첩 사건을 다루는 공안기관을 국보법상 무고·날조 위반 혐의로 수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사팀장은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이 맡았다. 권정훈(45) 부산지검 형사1부장도 수사팀에 합류했다. 수사팀은 이르면 8일부터 관련 국정원 직원들을 소환해 김씨 진술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날 전격 수사 전환은 ‘국정원 협조자’ 김씨가 7일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 대표, 수사팀, 아들에게 남긴 유서 내용이 공개된 것이 계기가 됐다. 김씨는 아들에게 남긴 유서에 “국정원에서 받아야 할 금액이 있다. 2개월치 봉급 600만원, 가짜서류 제작비 1000만원”이라고 적었다.

 이어 “이 돈은 받아서 네가 쓰면 안 돼. 깨끗하게 번 돈이 아니다. 국정원 상대 손해배상 청구를 해. 가능할 것이다”라고 썼다. 국정원이 김씨에게 금전적 보상을 대가로 서류 조작을 부탁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앞서 검찰 조사에서도 “국정원이 내가 전해준 문서가 위조된 사실을 알고 있으며 그 대가로 돈을 줬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김씨가 입수했다는 중국 싼허(三合) 세관 명의 공문은 간첩 혐의를 받아온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34)씨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된 문건 3개 중 하나다.

 김씨는 박 대통령을 향해선 “지금 국정원은 ‘국조원’(국가조작원)입니다”라며 국정원 개혁을 촉구했다. 안철수 의원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에겐 “이번 사건을 창당에 악용하지 말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김씨의) 조작 사실을 몰랐다”며 “위조 논란이 불거진 뒤 김씨에게 진위 여부를 물었는데 ‘직접 한국에 들어가 검찰에 위조가 아님을 밝히겠다’고 해서 동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1000만원의 성격에 대해서는 “싼허 세관 명의 공문은 진본이라고 믿고 법원에 제출했으며 입수비용은 이미 김씨에게 지불했다”며 “유서에 나온 가짜서류 제작비 1000만원은 전혀 별개다”라고 덧붙였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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