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질서 확립이 시급하다|「로버트·트리핀」교수<미 예일대>의 세계경제위기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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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4반세기 동안 잔잔한 물결 위를 항해하던 서방자본주의 경제가 불황·「인플레」·국제수지역조라는 삼각파도에 부딪치자 승객들은 1930년대 대불황의 참담한 악몽을 되새기며 공포에 질렸다. 선장과 항해사들은 이 돌연한 기상이변이 『아직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것』임을 확인했을 뿐, 타개방법에 대해서는 백가쟁명으로 의견이 갈렸다. 그리고 그 어느 해답도 만족할만한 설명은 되지 못했다. 이 바람에 일부에서는 멋대로 세운 독립적 가설과 불완전한 계량화로 경제예측을 연역하는 이들에게 전폭적인 불신감을 표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다음에 소개할 「로버트·트리핀」교수(미「예일」대)의 논문은 이와 같은 불신감을 더는데 상당히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주>
흔히 현재의 세계경제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정체하의 「인플레」)이라는 말로 요약해서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인페션」(Infession=「인플레」속의 경기후퇴)이라는 조어를 쓰고 싶다. 현재의 세계경기는 단순한 정체단계를 넘어서 불황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이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었던 어떤 경제적 난관과도 다르며 전통적인 시장기능이나 정책수단에 의해서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문제의 성격부터 명백히 해둬야 할 것이다. 나는 현재의 「인페션」현상이 다음 4가지항목으로 분류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첫째, 세계적 불황에 관련된 문제점이다. 원인이야 어쨌든 세계 각국은 2차 대전 이후 줄곧 유지해오던 경제성장을 중지했으며 어쩌면 대불황이 엄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갖고있다.
둘째, 「인플레」와 관련된 문제점이다. 미국의 「인플레」는 제외국이 과잉「달러」를 흡수해줬기 때문에 일단 해결되었으나 이 바람에 이들 제외국이 「인플레」물결에 휩쓸렸다.
세째, 대외불균형의 만연이다. 미국은 70∼73년 사이에 7백억「달러」이상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달러」화의 급속한 유출은 결국 국제통화질서마저 붕괴시켰다.
네째, 전통적인 대응정책수단의 무기력화와 한계성이다. 「인플레」나 국제수지나 불황에는 제각기 그 나름의 대응정책이 있었지만 그 중의 어느 하나는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이상 네 가지 문젯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인페션」현상의 극복은 독립적인 경제정책이 아니라 정치·사회·국제관계를 총괄하는 종합적인 정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종합정책은 각 국의 상호협조를 기초로 비로소 이룩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페션」현상의 보편적인 극복은 국제협조체제의 회복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는 인류의 경제적 유대가 국경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국제통화질서확립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가간의 통화질서가 문란해지면 교역·자본거래가 흔들리게 마련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협조를 기대하기란 극히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현재의 「인페션」현상도 기본적으로 국제통화질서의 붕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판단한다.
예컨대 49∼69년 사이에 세계의 대외 준비고는 약3백20억「달러」늘어났으며 이것은 연율 2.7%의 증가「템포」였다. 그러나 70∼72년 사이에는 연평균 27%의 증가율을 보여 대외 준비고는 10배로 늘어났다.
대외준비고의 이와 같은 팽창은 국가통화인 「달러」화를 국제통화의 기축통화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의 「인플레」수출을 무한정 받아들이게 만든 제도적 결점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SDR(특별인출권)가 창출됨으로써 국제유동성이 국가통화의 증발 내지 「인플레」적 수술에 의해 좌우되는 위협을 벗어났다.
따라서 세계 각국이 국제적 협조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인페션」극복책을 실천하려면 SDR를 중심으로 한 신국제통화 질서부터 구축해야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각국 경제는 서로 수혈이 가능해지며 「인플레」·경기대책이 주름살 밀어붙이기 경쟁으로 변해버리는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인페션」의 모습은 시각에 따라 「인플레」·불황·국제수지문제 등 여러 가지 얼굴로 나타난다.
그 변용의 근본원인은 각국의 「에고이즘」에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협조의 바탕인 국제통화질서부터 확립해야한다.
그리고 새로운 국제통화질서는 국가통화인 「달러」대로부터의 해방, 다시 말해서 이제 갓 태어난 SDR의 육성을 통해 이룩될 수 있을 것이다. <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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