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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의 중공수교「러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인지적화 이후 두 달도 못돼서 동남아에는 새로운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아세안」각국과 중공간의 활발한 수교「러쉬」로 단순화되고 있으나 그 밑바닥에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린 복잡한 사정이 배태되어있다.
동남아 정세의 요점은 이 지역 국가들의 안전보장문제, 「하노이·블록」과 「아세안」국가들의 평화공존문제, 그리고 미·소·중공 등 강대국들의 이해대립 문제로 집약된다.
동남아가 미국의 선별적 지원대상에서 소외되는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 힘의 공백지대에 소련해군력이 침투해 들어올 가능성은 배제되기 어렵다.
그럴 경우 중공은 필연적으로 「아세안」각국의 모택동주의 「게릴라」와 화교들을 발판으로 소련세에 역습해 들어올 것이 뻔하다.
이러한 분란의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고, 자국의 안전보장을 확보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이들 국가들은 동남아 중립화와 대중공 수교라는 고육책을 선택한 것 같다.
인지적화에 고무된 국내「게릴라」들이 갑자기 활개를 치기 시작한데다, 소련의 해군력이 인도양과 동북아의 양면으로부터 남하해 내려올 기세를 보이는 판국에 「아세안」국가들로서는 중공이나 「하노이·블록」을 적대할만한 입장이 못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편 중공으로서도 소련의 동남아진입을 방관함으로써 이 지역에 해남도 기지를 겨냥한 소련의 공격력이 자리잡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때문에 북경 역시 동남아 반공국들의 「게릴라」에 대한 당적「레벨」에서의 혁명지원 보다는 국가적「레벨」에서의 화해모색이 더 시급히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 전략의 일환으로 중공은 이미 동남아를 상대로 「패권반대」선전과 석유외교를 서서히 전개해온바 있다.
저류 황질에다 중유분이 많다는 중공석유는 1「배럴」당 7「달러」50「센트」의 싼값으로 「필리핀」에 수출되고 있다. 똑같은 석유가 일본에는 12「달러」10「센트」로 공급되는 것과는 대차를 보이는 것이다. 그 결과로 국제석유자본 「엑슨」이 작년말 「필리핀」에서 밀려났다.
이 같은 중공의 석유공세는 태국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렇듯 동남아 각국의 중공영사는 국제경제의 측면에서도 무시 못할 문젯점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게 투철한 반공주의자였던 「마르코스」대통령과 공산거두인 모택동은 상호불가침과 내정불간섭 및 미·소의 「아시아」패권 장악에 반대한다는 취지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어딘가 예기치 못했던 악수일 수도 있다.
때문에 이러한 장면은 동상이몽의 대면일수도 있고, 국제외교의 실상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중립화된 「아세안」지역 반공국가들의 장기적 안정』은 중공과의 수교만으로는 완결된다고 볼 수 없다.
우선 국제적으로 「아세안」중립화를 보장하려는 적극적인 열의가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소련의 태도가 지극히 냉담할 뿐 아니라 미국 역시 소극적이다. 일본은 원유 수입「루트」의 안전여부에 집착한 나머지 동남아 불개입정책을 달가와할 수만도 없는 처지다.
게다가 태국·「말레이지아」·「필리핀」의 경우엔 「게릴라」의 준동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터에 중공이 이후에라도 그들에게 「이데올로기」상의 지지마저 포기하리란 보장은 없다. 또 동남아는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외자와 외국기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이들 나라들의 내정도 결코 순탄하지 만은 않은 허다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위험요인을 감안할 때 최근의 중공「러쉬」는 장기적으로「안정」보다는 오히려 「변동」의 원인을 만들어 이 지역의 평온을 교란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일단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때문에 동남아 안정을 위해서는 강대국의 자제와 「아세안」의 자주국방 및 사회복지의 개발이 적극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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