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상경서「세계정상」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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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이 「프로·복싱」사상 세 번째로 세계강좌에 오른 유제두는 지난67년전남고전군두원면신송리에서 무작정 상경,「글러브」를 낀지 7년만에 세계정상까지 오른 입지부적「복서」다.
그는 고향에서 아버지유우석씨(60)와 어머니이정례씨(58)의 6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 두원국민교와 고전중학,고전외설를 마치자 D세매 서울로 뛰어 올라왔다.
그가 가위질을 하며 손수레에 강냉이·사과 등을 싣고 거리를 누비며 생계를 이어오다 첫 권투를 시작한 것이 마포 제일권투회를「노크」하고부터.
이영환사범(사망)의 지도를 받아「아마」선수로「멕시코」대회 1차 후보까지 뽑혔으나 최종선발결승전에서 체중초과로 누락됐다.
이후68년「프로」에 뛰어들어 연승가도를 달려 71년4월 이안사노를 1회에 KO시켜 한국「미들」급「챔피언」이 됐으며 71년7월 일본의 흑인혼혈「복서」인「캐시어스·나이또」(내등)를 서울에 불러들여 6회2분5초만에 KO로 제압, 첫 동양「미들」급 왕좌에 올랐다.
이후 그는 이택과 두번,「나이또」와 4번을 싸워 모두 승리했고「터틀·으까베」(강부),「나까무라」등과 대전하면서 동양 「타이틀」을 14차례나 방어했으며 일본인과 22번싸워 모두 승리하여 일본인「킬러」의「닉네임」을 받기도 했다.
그가 패한 것은 전동양「켈터」급 「챔피언」임병지에 8회 KO패한 것뿐이고 재일교포인 전 동양「주니어·미들」급 김영범에 무승부를 기록한일이 있다.
그는 그가 「나이또」를 물리치고 동양왕좌에 오른 후 첫 사범이던 이영환씨의 은혜를 잊지 못해 쌀1가마를 사 갖고 가기도 했으며「프로」생활은「매니저」서순쟁씨와 「트례이너」김덕팔씨와 함께 고락을 같이 해왔다.
그러다가 작년3월 강석운씨로「매니저」를 교체했는데 김덕팔씨와는 자기이름·성을 따라서 서울마포구룡강동에 유덕체육관을 만들고 훈련을 해왔고. 74년 8월부터 해태제과 박병규사장은 유제두를 해태제과광고부에 입사시켜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뒷바라지 해줬다.
그는 동양「챔피언」이 된 후 항상8O만∼1백만원의「파이트·머니」를 받아왔으나 철저하게 훈련비만을 써와「노랑이」소리를 듣기까지 했는데 약 2천만원의 돈을 번 것으로 소문이 나있기도 하다.
그는 태권도 2단에 술·담배를 하지 않는 성실파며 말수가 적고 항상 예의바른 선수로 평가받고있다.
이번「타이를· 매치」는 일대2백50만「엥」을 「파이트·머니」로 받고 싸웠다.
유제두는 2년전에 고향의 이웃 도양면 녹동에 사는 한장심양(26) 과 결혼, 현재 두 살 난 아들과 돌이 채 지나지 않은 딸과 동생 제국군(16)과 함께 마포구현석동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방에는 그가 7년동안 모아온 숱한「트로피」가 방을 메우고 있으며, 항상 부인 한장심씨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권투생활을 지속해오고 있다.
유제두는 이번「타이를·매치」가 실패할 경우 은퇴도 각오하고 그동안 유덕체육관과 한민체육관을 전전하며 2백인「라운드」에 걸친 훈련을 해왔다.
그는 떠나기 전 심한 훈련으로 코피까지 흘렸으며 부단한 연습으로 홍수환과는 달리「주니어·미들」급 한계체중 69.85kg을 항상 조절할 수 있어 이번에도 첫번째 계체량에서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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