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정책의 여파|기업자금난 심각|설비투자는 뒷전...적금지불 못하는 업체에 도산도 늘어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의 강력한 긴축정책이 업계에 침투, 기업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운영자금을 꾸려가느라고 설비투자는 생각도 못하고 있으며, 운전자금조달도 은행의 대출억제 등으로「파이프」가 막혀 사채·단자·보험회사 등으로 자금 원을 찾아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사채의 유통규모가 부쩍 커지고 이율도 오르는가 하면 어음의 부도가 늘고 요구불예금의 회전율이 빨라지는 등 기업자금사정의 핍박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유수한 H상사·K기업 등이 임금과「보너스」를 제때 지급 못했고 거액의 부도를 내고 도산하는 업체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채>
3월 들어 은행의 신규대출이 거의 중단되면서 기업의 사채의존이 부쩍 늘었다. 국세청의 병배세 징수기준으로 본 지난 3월중의 사채유통규모는 1천3백80억 원으로 2월까지의 월평균 8백억 원에 비해 72.5%나 대폭 늘어났다.
그러나 병배세의 인상 등에 따라 점차 음성화되고 있는 사채까지 합치면 지난 8·3조치 때와 비슷한 수준인 약3천억 원 정도가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금리도 월평균 3.5∼4%로 올랐고 1백만 원 이하의 소액사채는 5%까지, 고액사채도 종전의 2%내외에서 3%선으로 높아졌다. 그나마 쓰려는 사람은 많아도 줄 사람이 없는 형편이다.

<단자>
단자회사에 자금수요가 몰리고 있다. 4윌 중 서울의 6개 단자희사 수신은 1백2억 원, 여신은 1백7억 원이 증가해 평소의 50억∼60억 원 증가에 비해 약 배에 가까운 신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원이 달려 폭주하는 자금수요를「커버」하지 못하고 있다. J산업의 경우 작년에 운전자금의 약 6분의1을 단자회사에 의존했으나 현재는 그것도 힘들다는 것이다.

<부도>
지난 2월중 서울의 어음수표교환 액이 1조8천억 원인데 부도액은 14억 원이었다. 3월중은 2조2천2백억 원 교환에 16억 원이 부도였으나 4월엔 2조1천억 원의 교환 액 중 부도액은 21억 원(약1%)에 달함으로써 기업의 자금사정악화에 따라 부도율도 확대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요구불 예금 회전율>
일반시중은행 요구불 예금의 회전율이 2월의 8.6회에서 3월엔 1회가 높은 9.6회로 빨라져 기업의 악화된 자금난을 반영하고 있다.

<적금. 보험의 해약>
종래 일정불입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실시되던 은행의 적금대출 마저 중단되는 바람에 자금에 쫓기는 기업은 이자손해를 무릅쓰고 적금을 해약하는가 하면 보험계약도 중도해지, 막대한 원금의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있다.
또한 높은 금리 때문에 전에는 인기가 없던 신탁대출도 재원부족으로 신규여신이 안 되는 형편이다.

<산업용 건축>
기업의 자금난은 산업용 내지 공업용건축에도 미쳐 지난 3월중의 전국 산업용 건축허가 면적은 19만2천㎡로 2월에 비해 13.7%가 줄었고 공업용건축허가면적은 17만4천㎡로 작년동기에 비해 28.1%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처분이나 기업공개 등 직접금융에 의한 자금조달도 대부분 이용하는 사람이 제한돼있고 관련여건이 경직화되어 있어 기업은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운영자금의 경색을 면치 못한다는 모순을 안고있다.
아무튼 시중의 자금난은 국내여신이 연율 60%나 늘었음에도 대부분 수입대금결제와 차관원리금상환 등으로 환수돼 시중유동성이 오히려 감소되고 있다는데 기인한다.
4월부터 외환사경이 다소 나아지고 있으나 아직 경상적자가 월 2억「달러」선에 달해 유동성의 완화는 어려운 현실이고 따라서 당분간 정부의 긴축이 계속된다고 볼 때 기업의 자금사정이 조속히 물릴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