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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법정에 빈자리가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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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최근 집값이 오름세를 타자 시세보다 싸게 집을 장만하려는 수요가 부동산 경매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지난달 27일 아파트 경매가 진행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경매법정이 입찰자로 북적이고 있다. [황의영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1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경매 2계. 300여 명이 북적거리는 경매법정에서 앳된 얼굴의 청년이 눈에 띄었다. 새내기 직장인 유모(31)씨는 “집 부담에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결혼 시기를 쉽게 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데다 전세보다 집을 사는 게 유리할 것 같아 경매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이날 그의 눈길을 끈 물건은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99㎡(이하 전용면적) 크기 단독주택. 유씨는 감정가(2억7329만800원)의 97% 수준인 2억6509만9990원에 응찰했지만 13대 1의 입찰 경쟁률을 뚫지 못했다. 이 물건은 감정가보다 141만원 비싼 2억7470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시세보다 싸게 집을 장만할 수 있는 법원 부동산 경매시장이 직장인·주부 등으로 북적이고 있다. 경매시장 열기가 뜨거운 데는 정부가 세제 완화 같은 주택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데다 집값이 오름세를 탄 영향이 크다. 사람이 몰리자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동산태인 조사에 따르면 서울·수도권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2월 말 기준)은 84%로, 1년 만에 8%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2010년 2월 이후 최고치다. 2월 말 현재 경매물건당 평균 입찰자는 8.9명으로, 1년 새 48% 늘었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감정가보다 비싸게 팔리는 고가 낙찰이 속출하고 있다. 2월 한 달간 서울·수도권 아파트 고가 낙찰은 74건으로, 지난해 2월(17건)의 4.4배 수준이다. 지난달 27일 경매에 나온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42㎡형은 감정가(7억원)보다 1150만원 비싼 7억1150만원(낙찰가율 101%)에 주인을 찾았다. 지난달 중순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시범살구꽃 풍림아이원 84㎡형은 감정가(2억2000만원)보다 무려 2500만원 비싼 2억4500만원(낙찰가율 111%)에 낙찰됐다.

 선호도가 높은 중소형뿐 아니라 그간 ‘찬밥’ 신세였던 전용 85㎡ 초과 중대형에 대한 관심도 살아나고 있다. 낙찰가율은 물론 입찰경쟁률이 높아졌다. 2월 서울·수도권 중대형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은 80%로, 1년 새 8%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경매물건당 평균 입찰자는 48% 늘어 7.6명이다.

 집값이 오르면 감정가와 현재 시세 간 격차가 벌어져 경매의 매력이 커진다.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2월 말까지 서울·수도권 아파트값은 평균 0.13% 올랐다. 지난해 9월부터 5개월째 상승세다. 정대홍 부동산태인 팀장은 “감정가는 대개 6개월~1년 사이에 정해지는데 최근 집값이 오르면서 감정가 수준에 낙찰해도 시세보다 싸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에서 원하는 매물을 구하지 못해 경매장을 찾기도 한다. 서울 잠실동 잠실1번지공인 김찬경 사장은 “인기 학군지역이나 강남 재건축 등 관심 지역의 인기 있는 단지는 매물이 귀하거나 값이 비싸 경매장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전했다.

 경매 열기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택 거래가 살아나자 경매에 나오는 물건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지난달 경매에 처음 나온 서울·수도권 아파트는 1521가구로, 전달(1784가구)의 85% 수준이다. 홍석민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실장은 “채권자 입장에서는 경매에 내놓는 것보다 매매시장에서 처리하는 게 유리하다”며 “경매에 나오는 물건이 줄어들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낙찰가율이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최현주·황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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