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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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정록 (1964~) '관계' 부분

화장지 좀 바꿔주세요.
똥꼬가 잘 쓰다듬어지지가 않아요.

아침 일찍 여섯 살 난 아들 겨울이가 소리 지른다. 그렇지, 서로 쓰다듬을 때 온전한 사랑이 되지. 입술이 밥숟가락을 쓰다듬을 때며 혓바닥이 젓가락을 쓰다듬을 때, 쌀밥도 압력밥솥 뜨거운 숨결이 오래 쓰다듬은 것이지.

'닦는다'라는 동사와 '쓰다듬는다'라는 동사 사이에 우리들의 각박한 초상이 있다. 아내의 가난한 살림살이가 있는가 하면 세상을 살면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적대시하고 싸우는 우리네 살림살이가 있다. 마른 가지를 쓰다듬는 바람으로 개나리가 피고 돌 틈에선 진달래가 핀다. 그래서 떨어지는 벚꽃들도 아스팔트를 쓰다듬으러 내려오는 것이다.

강형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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