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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경쟁하느니 히든챔피언 될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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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원격검침시스템 전문업체인 타이드의 전희연 대표는 “이름보다는 제품으로 유명한 히든챔피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경빈 기자

2000년 28세의 여성 연구원 하나가 동료 연구원 다섯 명과 함께 회사를 차렸다. 자본금은 불과 1억원. 그러나 아이디어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당시는 인터넷 수요가 폭발할 때였다. 전화선을 이용한 인터넷은 느리고 잘 끊겼다. 추가 회선도 깔아야 했다. 집집마다 설치된 전기선을 활용해 인터넷을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에 도전한 당돌한 연구원은 전희연(42) 타이드 대표. 그는 현재 직원 15명을 두고 해외 4개국에 디지털 계량기 같은 원격검침인프라(AMI) 상품을 수출하는 14년차 기업인이 됐다.

 지난해 매출 22억원을 일으킨 전 대표지만, 사실 그를 연구원이 아닌 기업인으로 만든 창업 아이디어는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사장됐다.

3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전기선을 인터넷 망으로 이용할 수 있는 모뎀(PLC, Power Line Communication) 상품을 내놓았지만 통신사들이 대대적으로 인터넷 광랜 설치 사업에 나섰던 것이다. 대기업 건설사의 주택전시관에 가정용 전자제품을 원격으로 작동하는 홈네트워크 서비스 장치를 설치하면서 근근이 버텼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와 동작을 감지하는 카메라 개발에도 나섰다. 거기에도 3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사업도 실패로 끝났다. 시제품이 나올 무렵 일본 기업이 더 좋은 성능의 제품을 단독으로 출시한 탓이다.

전 대표는 “아이디어만으론 사업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늘 시장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두 번 세 번 점검하고, 사업에 본격 착수하면 특허권부터 챙긴다.

 그래도 역시 중요한 건 아이디어. 국내에선 사장된 전기선 활용 인터넷 모뎀이 해외에선 먹혔다. 국토가 넓은 북미나 유럽 같은 나라에선 통신사가 집 앞까지 광랜을 설치해 인터넷 선을 깔기 어렵다. 바로 그런 지역에 국내에선 활용할 수 없었던 PLC 모뎀 제품을 팔기 시작했다. 2003년 일본을 시작으로 지금은 미국과 유럽 중남미 2개국 총 4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그럭저럭 사업이 되는 것 같았다. 해외에선 PLC 모뎀도 팔리고,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를 대상으로 홈 네트워크 서비스 사업도 벌이고, 간간이 정부의 용역 프로젝트도 따내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매출은 점점 떨어져갔고, 직원들 월급 줄 돈도 없었다. 전 대표는 “여기저기 벌여놓은 건 많은데 정작 수익을 내는 주력 사업이 없다 보니 남는 게 없는 상황이더라”고 회고했다. 타이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킬러 아이템’이 필요했다.

 “시장 환경 변화를 고려해 주력 사업을 정했어요. 디지털 계량기 사업이 가장 전망이 좋아 보였죠. 빌딩이고 아파트고 전력 사용을 줄이는 스마트 빌딩으로 변모할 거라고 본 거죠. 계량기 같은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원격 검침 시스템을 설치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한 것도 그때였어요.”

 제품에서 시스템으로 사업을 전환하고 나서는 시장이 넓어졌다. 단순히 계량기만 파는 게 아니라 계량기가 측정하는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 같은 주변 기기를 함께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 방향을 전환한 뒤 건설사와 한국전력이 고객사가 됐다. 그러면서 7억원 수준이던 연 매출도 세 배 이상 늘었다. 올해 예상 매출액도 지난해 보다 세 배가량 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시스템을 설치한 가구가 3000가구였는데, 올해는 설치 계약을 한 가구만 1만 가구에 달해서다. 전 대표는 ‘타이드’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리는 데 힘을 쏟지 않는다. 오히려 히든챔피언(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강소기업)을 꿈꾼다.

 “직원 15명인 타이드가 대기업과 경쟁해 이길 수 있을까요? 저는 대기업을 고객으로, 파트너로 삼아 회사를 키우고 싶습니다. 이름이 아니라 제품으로 더 유명한 히든챔피언이 될 겁니다.”

글=안지현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IBK기업은행· 중앙일보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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