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 제재에 나선 국제신용 기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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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베를린=엄효현 특파원】외화부족으로 무역결제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해 서구 교역 당사국들로부터 채근을 받아오던 북괴에 대해 최근 서독의 신용보험회사인 「헤르메스」사에서 북괴에 대한 수출신용장 인증을 중지, 구체적인 제재가 시작 됐다. 서독의 일간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이 같은 「헤르메스」사의 조치와 관련하여 12일 『무역대금 지불 못하는 북괴』라는 표제를 달아 1면 「톱」기사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국제시장에서 공산국가는 신속하게 대금을 지불하는 국가라는 지금까지의 통념이 최근 처음으로 깨어졌다. 서구 국가 중 특히 서독·영국·「프랑스」의 상사와 은행들은 북괴가 지불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재정보증도 실효가 없어 북괴와의 교역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 진전에 대한 반작용으로 「헤르메스」 신용보험회사는 신규 수출신용장 인증서 발급을 중지하고 있다.
북괴는 지난해 가을부터 1차로 상환해야 할 금액 지불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당시에는 지불의사가 없어서 그랬는지, 지불능력이 없어서 그랬는지 분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 원료시장에서 가격이 폭락한 뒤 북괴가 긴박한 외화 난에 허덕이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북괴는 외화지불 능력을 잘못 평가하고 서방국가로부터의 수입을 격증시켜 왔었다. 그러나 평양 정권은 도중에 외화 부족에 직면하여 수입 정책이 제한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북괴가 갑작스럽게 외환부족 상태로 지불불능이 되었다는 이러한 의견에 대해 「헤르메스」 신용보험회사측도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무역도시 「함부르크」업계 소식통들도 채무국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수입신용장 발급을 중지하는 것은 올바른 조치라고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채무지불 불이행이 일시적인 상태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러나 곤란한 점은 북괴와 외교관계가 없다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실상 지금까지 북괴와의 상담은 제3자를 통해 가능했을 뿐이라고 이 소식통들은 말하고 있다.
소식통에 의하면 여태까지 흠이 없다가 북괴로 인해 먹칠이 된 공산국가의 신용을 회복하려고 소련이 나서고 있다. 「모스크바」의 무역은행과 중구(동구·서구포함)에 사무소를 둔 신용기관들이 이미 중재에 나서 몇몇 경우에는 부분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함부르크」의 동「아시아」협회의 추산에 따르면 북괴의 무역 적자는 엄청나게 확대되고 있다. 「프랑스」를 제외한 OECD제국과의 거래만 해도 74년 중 수입 12억「마르크」에 비해 수출 실적은 3억 3천 5백만「마르크」에 불과했다. 「프랑스」와의 경우도 적자폭은 1억「마르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막대한 액수의 적자가 급증한 이유로는 서독을 포함한 서방국가와의 거래가 너무 일방적으로 수입만 늘어났던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독의 대 북괴 수출만 해도 74년에 2억 8백 50만「마르크」(9천 7백만「달러」)를 기록했다. 북괴가 지난해 서독·「오스트리아」를 통해 대량 주문했던 것은 열력기관에 필요한 부품을 비롯, 「마그네사이트」광· 철소 제련설비 및 선광시설 이었다. 북괴가 서독에서 수입해간 물품들은 이외에도 인쇄기계·식품「플랜트」·공작기계 등 완제품이었다.
북괴의 수출품은 주로 연·동을 비롯한 광석류 등 1차 산품이었다. 북괴의 원료가 풍부한 점으로 미루어 장기적인 공급 전망은 나쁜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원료시장에서의 가격폭락은 북괴의 국제수지를 파탄으로 몰아갔다.
게다가 흔히 말하듯이 북괴 무역상사의 내부적인 조직, 결정기관의 결함 및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경험부족도 큰 원인의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 오랫동안 자의적인 고립상태에 있다가 갑자기 국제시장이 등장한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인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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