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괌도 난민촌 24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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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원주민과 맞먹는 난민 12만>
『피난민 기지「괌」도』. 미군의 전략기지로 이름이 알려진 「괌」도에는 월남 패망이 안겨 준 월남 탈출 피난민의 대열이 매일 끊이지 않아 차라리 「피난민의 섬」이라 부르는 것이 낫게 되었다.
북위 38도 26분·동경 1백 44도 43분. 태평양상 「마리아나」군도 최남단에 자리잡은 「괌」도는 1521년 「마젤란」이 발견한 이래 최대의 객식구를 맞이하고 있다.
오는 10일 안으로 월남 난민 8만여 명이 더 도착할 예정이어서 「괌」도는 12만의 원주민과 맞먹는 12만 명 가량의 이국인을 맞는 셈이 된다.
ASAN 「캠프」·JNG 「캠프」·「오로테」반도 등 12개 난민수용소는 새벽 4시 반쯤부터 포성은 들리지 않지만 생존을 위한 피나는 전쟁터로 변한다.
아비규환의 「사이공」 탈출에서 고난의 항로 끝에 생명을 건졌다는 안도와 환성은 이내 가시고 제2의 삶을 찾기 위한 경쟁이 뙤약볕 아래 하루도 쉴 날이 없다.
난민들은 섭씨 33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때문에 새벽잠을 더 자려야 잘 수 없다. 자는 둥 마는 둥 깨어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곳이 간이급수 장소. 그러나 세수는커녕 물 한 모금을 얻어먹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월남 「사이공」서 사업하다 탈출한 이무근씨(45·서울 도봉구 미아동 산38)는 이곳 수용소에 수용된 후 세수를 딱 한번 했을 뿐이며 양치질은 한번도 못했다고 했다.

<한국인은 일체 외출을 못해>
아침식사를 위해선 줄을 서야 되고 최소한 2시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괌」도의 생활은 바로 「인내의 생활」이기도 하다.
수용소 이민당국의 월남인 우선 정책에 밀려 겨우 아침 한끼를 먹은 다음 한국인들의 일과는 이제나저제나 하고 자신들의 이름이 불리기를 학수고대하는 데서 시작된다.
일체 외출이 허용되지 않아 사람 찾는 월남어 방송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을 보내는 한국인들의 화제는 몸서리치는 월남탈출 얘기서부터 앞으로의 새 생활 설계 등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것들.
이들은 얘기의 꽃을 못다 피우고 또다시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야 한다. 그러나 더러는 줄을 서 기다리는 것이 지겨워 아예 포기하기도 한다.
이씨는 『식사는 부족한 편이 아니나 김치가 어떻게 먹고 싶은지 모른다』고 했다.
하다 못해 양배추라도 좋다는 그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거의 다 풀만 보면 뜯어먹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고 했다.
「사이공」 함락 후 지금까지 「괌」의 수용소에 수용된 난민은 6만 4천 2백 17명. 거의 월남인인 이들 중 이미 2만 4천 34명이 미국 등지로 떠났고 8일 하오 현재 3만 6천 2백 85명이 들끓고 있는데 이 북새통에서 「괌」도 주민들은 「아이스크림」장사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아이스크림」상이 최고인기>
「아이스크림」 장수가 오면 그 주위는 벌떼처럼 인파가 몰려 삽시간에 동이 난다.
그래서 어쩌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게 되면 『그날은 재수가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
이따금 급수차가 나오면 한 모금의 물을 먹으려고 장사진을 이루는데 새치기가 끊이지 않아 한바탕 욕지거리가 오가기도 한다.

<"기왕 나온 몸 외국서 결판">
금 덩어리를 갖고 있는 월남인을 보고 헐값에 사려고 흥정하는 미군이 있는가 하면 어느 미군은 월남의 임산부에게 급수편의를 봐주고 희롱하다 월남인에게 둘러싸여 욕설을 먹는 모습도 보였다.
이와 반대로 「제임스」상병 (「텍사스」주 출신)은 월남 난민 뒤치다꺼리를 위해 피로도 모르는 채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내 비록 졸자지만 월남을 못 지킨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내가 땀흘려 일해서 조금이라도 보상이 되면 이에 더한 것 없다.』 「제임스」 상병은 군대생활 5년에 이처럼 바쁘기는 처음이라면서 신나게 활동, 많은 월남인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다.
『기왕에 외국에 나온 몸이니 결판을 내야겠어요.』 난민촌의 한국인들 대부분은 제3국에서 새 삶의 길이 열릴 것을 갈구하면서 「괌」도의 수용소를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글· 사진 김건진 특파원

<아가냐(괌도)→ 본사 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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