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방위공약과 미국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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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포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 지도자들은 최근 여러 기회를 통해 거듭 거듭 대한방위공약을 다짐하고 있다.
인지에서의 후퇴로 심각한 손상을 입은 미국의 대외 방위의지에 대한 신뢰감을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월남과 「크메르」의 공산화는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동맹국들에 충격을 준 반면, 공산 측을 고무시킨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도 특히 인지사태의 충격을 가장 민감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한 한반도라는 것은 세계가 다 공감하고 있는 터다.
『한·미 방위조약의 포기는 미국의 전후 전 외교정책으로부터의 마지막 철수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 「키신저」 국무장관의 성명이나 『한국군 현대화 계획과 상관없이 주한미군의 현 규모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슐레징거」 국방의 다짐은 이런 뜻에서 종래의 대한 공약의 강도를 더 한층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미국 의회에서의 주한 미군 감축론의 후퇴경향이다.
아직은 이러한 경향이 깊이 뿌리를 내린 것 같지는 않으나 지금까지 미 의회에 팽배하던 신 고립주의적 성향에 인지사태를 계기로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이 사실이다.
미·소의 세계정책과 미·일·소·중공 등 4강의 이해가 얽힌 동북아의 세력 균형요구에 비추어 이제 미국은 스스로의 국익을 위해서도 대한방위공약을 약화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인지에서의 후퇴 이후 미국에 있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는 그 상대적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을 막는 억지력으로써나, 소련 극동함대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발판으로써나, 또 일본의 중립 내지 좌경화와 재군비를 막는 담보로써나 불가결한 존재임을 이제 누구도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인지사태 이후 미국 정부와 의회 지도층 일부의 잇따른 대한방위 공약이야말로 이러한 기본인식을 새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남과 「크메르」의 비극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긴 했으나 안보면에 있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미 방위 체제의 실질적인 강화를 가로막게 될 저해요인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미 국민들의 염전적 「무드」와 이를 반영한 국민여론일 것이다. 월남 항복 이전 3월말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이긴 하나 한국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65%의 미국인은 미국의 개입에 반대하며 단지 14%만이 개입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 국민의 전반적인 염전풍조를 바탕으로 하는 한 대한방위 개입에 회의하는 세력이 발언권을 행사할 여지는 미 의회 내에 상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대한방위공약에 회의·반대하는 바탕은 감정적인 군사개입 무조건 반대론에서부터 한국 내정에 관련된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다.
이러한 회의·비판론이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의 바탕을 취약하게 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종국적으로 우리의 안보가 우리 자신의 자체역량에 달렸다는 것은 재언할 필요도 없다. 자체역량이란 군사력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국정전반에 걸친 국력의 총합을 의미한다.
실상 인지사태가 교훈하고 있듯이 어떤 나라도 스스로 주체적인 역량을 갖출 때라야만 우방의 도움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력만을 강조한 나머지 우방과의 유대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도 위험하다.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강화하려면 그 나라의 정부지도자뿐만 아니라 의회·언론·국민여론 전반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증진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
그들의 충고를 귀담아 듣고,오해가 있다면 이를 해소하는 노력을 통해 국민적인 연대의식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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