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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옮겼나? 축산과학원도 AI 감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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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충남 천안 국립축산과학원에서 기르던 오리가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것으로 3일 밝혀졌다. 이곳은 유전자원 보존을 위한 연구용 닭·오리 1만6000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사진은 방역 당국 직원들이 고병원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축산과학원으로 들어가는 모습. [뉴시스]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정부 보호 시설까지 침투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자체 차단 방역은 소홀히 하면서 이번 AI 사태의 원인을 철새로 몰아간다는 비판이 다시 한번 나오게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충남 천안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에서 기르던 오리의 폐사체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3일 발표했다. 하루 전 축산과학원 안에서 오리 폐사체가 발견돼 이를 검사한 결과다. 바이러스 종류는 이번 사태에서 농가에 퍼진 것과 같은 H5N8형이다. 이곳에선 유전자원 보존·연구를 위해 닭·오리를 기르고 있는데, 이들마저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이다. 이 바이러스에 대한 고병원성 여부는 4일 밝혀질 예정이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의 한 종오리 농가에서 발병한 AI 바이러스가 축산과학원으로 퍼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축산과학원은 이 농가에서 반경 3㎞ 안에 있다.

농식품부는 이번 사태에서 AI 발병 농가가 확인될 때마다 반경 3㎞ 안에 있는 닭과 오리를 살처분했지만, 축산과학원 사육장에 대해선 유전자원 보존을 이유로 그 대상에서 뺐다. 그만큼 차단 방역의 수준이 일반 농가보다 높다는 뜻이었다. 이를 위해 축산과학원은 이곳 닭·오리와 접촉이 잦은 연구원의 출입을 최근 한 달 동안 금지해 왔다.

 하지만 이날 축산과학원 안에서도 AI 바이러스가 발견되면서 이 같은 정부의 차단 방역 능력에 대한 신뢰도에 흠집이 생겼다. 김재홍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주변 논밭을 오고 가는 야생조류가 옮겨온 AI 바이러스가 이곳 내부까지 침투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원인 조사와 함께 연구 공간 주변 방역 실태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역학조사와 함께 출입금지 기간 동안 무단으로 이곳 사육장을 드나든 연구원이 있는지도 조사할 예정이다.

 이전까지 축산과학원에서 기르던 닭과 오리는 모두 1만6000마리다. 이 가운데선 아미노산의 일종인 메티오닌·시스틴과 콜라겐이 많아 쫄깃한 육질의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재래 조선닭’도 살처분 대상에 포함됐다. 재래 조선닭은 1992년부터 농촌진흥청이 전국에서 수집한 닭 수백 마리의 유전 형질을 조합한 것이다. 이 밖에 수컷은 머리가 녹색을 띠고, 암컷은 부리가 주황빛을 보이는 토종오리도 같은 신세가 됐다.

 정부는 이 같은 사태에 대비해 수원·남원·용인·함평·장성·평창에 유전자원 보존용 닭·오리를 분산시켜 기르고 있다. 그러나 주 연구 장소인 천안 축산과학원의 모든 닭과 오리를 살처분해 상당 기간 연구 작업이 더뎌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축산과학원은 완전 복구되는 데 최장 2년까지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성일 농촌진흥청 재해대응과장은 “최대한 신속하게 복원 절차를 진행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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