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군 54세 농부는 왜 고교 신입생이 되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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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올해 신입생들, 교복을 입혀? 말아?”

 이런 고민에 빠진 학교가 있다. 경북 청송군 현서고다. 고민하는 이유는 20~50대, 평균 나이 41세인 신입생 9명이 3일 입학해서다. 올해 신입생 14명 중 64%로, 주부와 젖소를 키우는 농부 등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현서고에 들어온 데는 사연이 있다. 지난 1월 22일만 해도 현서고는 폐교 예정이었다. 올해 신입생 최소 모집정원인 14명을 채우지 못했다. 고작 5명만 모였다. 2월 3일까지 추가 모집기간이 주어졌지만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 소식이 현서면에 퍼졌다. 그러자 주민들이 나섰다. 면에서 유일한 고교를 지키자고 의기투합했다. 현서중을 나온 주민 5명이 주동이 됐다. 머리를 맞댄 끝에 “우리처럼 중학교만 마친 사람들이 입학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인근 10여 마을을 다니며 소식을 알렸다. 결국 2월 3일 마감시한까지 모자라는 9명을 채웠다. 이들은 3일 자식뻘인 학생들과 함께 학교 강당에서 입학식을 했다. 54세인 김상호씨가 최고령이고, 40대가 6명, 30대 1명, 20대 1명이다. 자녀가 현서중에 다니는 학부모도 있다. 자녀가 현서고에 진학하면 같이 학교에 다닐 판이다.

 현서고는 일단 이들이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거리들이 있다. 예컨대 학부모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이다. 이 학교 김효식(58) 교장은 “나이 많은 학생을 집단으로 받은 적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농사일로 바빠 지각이나 결석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지도 골칫거리다. 졸업장을 받겠다고 들어왔는데, 학업을 등한시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 교장은 “일단 출석일수를 채우도록 지도할 생각”이라고 했다. 최고령 신입생인 김상호씨는 “선생님들이 고민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학업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청도=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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