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각축의 양상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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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산 측의 승세 속에 다가오는 「인도차이나」전쟁의 종말을 보는 중공과 소련의 입장은 착잡하기만 하다.
중·소가 일단은 인지에서의 공산군의 승리를 축하하는 처지긴 하나 이 지역에 대한 중·소의 이해는 예각적으로 대립되기 때문이다.
최근 「뉴질랜드」방문에서 『동남아 국가들의 운명은 중·소간의 상위에 달려있다』고 지적한 이광요 「싱가포르」수상의 말은 월남전 이후의 동남아에서의 국제질서가 중·소간의 경쟁적 대립에 의해 좌우될 것이며 아울러 이 지역에서의 중·소 이해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잘 설명해 주고있다.
월맹을 맹주로 한 인지 단일공산세력권(소위 「하노이·블록」)이 월남전의 종결과 더불어 형성될 경우 그 인접 동남아국가들의 안보는 물론이지만 중·소의 안보 및 세계전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은 틀림없다.
그간 「크메르·루지」「라오스」애국전선 및 월남민족전선(베트콩)의 실질적인 후견국 이었던 월맹은 중·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독자적이고 독립적 노선을 견지해 왔다.
중공이 겉으로는 월맹 측의 승리를 찬양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월맹 측을 돕지 않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얼마 전 중공을 방문한 「칼·앨버트」 미 하원의장도 중공수뇌들과 회담한 이후 받은 인상이 이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밝히고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3월 대공세 직전에 월맹을 방문한 양용 중공군 부총참모장 일행이 월맹 측 작전에 깊이 관여했다고 주장한 일이 있지만 그동안 중공의 대 월맹 태도로 미루어보아 다분히 전후 소련을 의식한 선제행동으로 보는 견해가 보다 유력하다. 「하노이」측이 인지에서의 맹주역할을 떠맡기 위해 소련과 밀착하는 이른바 「원교근공」정책을 밀고 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 이런 견해를 뒷받침한다.
그럴 경우 중공으로서는 남북으로 적대세력에 포위되어 그 안보에 위험을 느끼게 될 것이다. 「크메르·루지」의 실권자는 북경의 「시아누크」공이 아니라 월맹의 지원을 받는 「삼판」이라는 사실 때문에도 중공으로서는 인지에서의 공산 측 승리가 반드시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하노이」측으로서도 바로 이 점 때문에 섣불리 중공을 멀리하고 소련과 가까워 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중공은 「타이」를 비롯한 여타 동남아국가와 가까워 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련은 오래 전부터 중공에 대한 포위망 구축을 그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삼아왔지만 「말라카」해협의 국제수역화 주장이 인니·「말」연 등의 반대에 부닥쳐 좌절 된데다 「론·놀」정권을 승인, 최근까지 외교관계를 맺어온 실책을 범했다.
소련은 자난달 29일 약삭빠르게 「론·놀」정부와 단교, 「시아누크」 망정을 승인하긴 했지만 그것으로 실책이 만회될 수 없을 것은 뻔한 일.
소련이 「하노이·블록」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전쟁으로 퇴폐한 월맹의 경제복구에 적극 참여하는 것인데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을 내세우는 월맹이 이를 어떤 시각에서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독립심이 강한 「하노이」측이 인지에서의 맹주노릇을 하기 위해서는 중공보다 소련에 근접할 가능성이 크다(「엘리건트」 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극동특파원).
특히 「슐레징거」 미 국방장관의 월남 함락이 미국의 세계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은 인지에서의 중·소간 각축으로 세력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란 데서 비롯된다. 「설리번」 주비 미국대사도 중공은 인지에서 「하노이·블록」 단일 세력권이 형성되는 것보다는 월맹·월남·「라오스」·「크메르」 등 4개 공산국가와 여타국가들의 병존을 원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미국정부의 이러한 판단이 월남·「크메르」가 공산화된다 해도 여타 인접국이 공산화되지 않을 것이란 인지사태에 대한 낙관론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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