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이 너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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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육은 반드시 수업시간에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몬테스큐」 는 『법의 정신』에서 기후와 토지의 성질에 의해 인간의 기질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습속이나 법도 달라지게 된다고 말한바 있다. 이는 인간 형성과정에 있어서 목적의식적인 교육 및 개인의 생득적 소질과 함께 사회적·자연적 환경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보면 교육은 인간형성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요인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나아가 가정교육·사회교육과의 연관성을 무시한 고립된 학교 교육이란 존립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 나라 교육의 실정을 보면 아직도 교육을 교사와 학생간의 2자적 관계로만 인식하는 개인주의적 교육관과 학교교육 만능사상 및 수업시간 우선주의가 지배적 경향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교육내용·교육풍토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모순과 폐단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왔다.
이중 가장 큰 것의 하나가 다름 아닌 중·고등학생들의 지나친 학교수업과 과외수업을 위한 과중한 부담이다.
학생들의 정상적인 발육·성장을 저해하는 무거운 책가방과 과도한 수업으로부터 학생들을 해방시켜야한다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또 중·고교의 무시험 진학제도까지 실시되고 있으나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데 있고, 따라서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학교의 정규수업·보충수업·과외수업을 합쳐 12시간 가까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과중한 공부에서 오는 심각한 부작용과 폐단을 들어보면 첫째 학생들의 건강과 신체발육에 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에 발표된 한 연구기관의 보고에 의하면 줄곧 앞서왔던 우리 나라 학생들의 체력이 최근에 와서 일본 학생들의 체력에 뒤지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국민 체력향상을 위해 체력장제까지 실시키로 했던 취지에도 크게 어긋나는 심각한 문제다. 물론 이는 식생활 및 물질적·문화적 생활상태와도 관련이 있기는 하나 근본적인 원인은 과중한 수업에 있음이 분명하다.
둘째는 학생들을 정신적·정서적으로 불안·불건전하게 만든다. 과도한 수업은 학생들을 육체적으로 피로케 할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계속적인 압박감과 긴장감을 주어 정상적인 인격형성에도 해를 끼치게 된다.
셋째는 학생들의 학습의욕과 창의성을 저하·손상시킨다. 지나친 주입식·암기식 교육은 불가피하게 공부에 싫증을 느끼게 하고, 기본적 사고능력을 기르는 「지적훈련」과 독창성을 함양하는데 결정적인 역기능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폐단을 가져오는 과중한 학교수업·과외수업이 시정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수업 제일주의·성적 제일주의에서 오는 것이다. 그밖에도 또 입시공부 위주의 교과운용과 나아가 출세주의 풍조 또는 학교간의 경쟁심, 일부교사들의 부 수입원 확보, 그리고 학생들의 소질과 능력을 도외시한 일부 학부모들의 허영심과 극성, 빗나간 교육열풍을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적정수업시간은 말할 것도 없이 충분한 교육학적·심리학적·생리학적 검토를 거쳐 결정되어야 한다. 주의작용의 유효한 계속시간, 교과목의 적당한 배당과 휴식시간 등을 고려하여 편제돼야 학습능률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수업시간의 다과에 의해 교육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교육은 지육·덕육·체육이 병행적으로 수행돼야 하고 학교교육·가정교육·사회교육이 상호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이루어져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이와 함께 중·고등생들의 과중한 수업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및 학군 추첨배정제도·학교 평준화시책 등이 안고있는 문제점도 차제에 다시 한번 근본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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