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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전투기 국경 출격 … 우크라이나 일촉즉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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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의 수도 심페로폴의 의회 건물 앞에서 친러시아계 시위대와 신 권력을 지지하는 타타르인 시위대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충돌 과정에서 시위자 한 명이 심장마비로 숨지고 2명이 인파에 깔려 부상당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한편 이날 새벽 수십 명의 무장 괴한이 의회 청사에 난입해 점거하고 러시아 국기를 게양했다. [심페로폴 로이터=뉴스1]

러시아가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 맞닿은 서부 국경지대에 전투태세 경보를 발령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국경 지역에 대한 전투기 순찰을 진행하고 있다”며 “전투태세 경보가 발령된 뒤 서부의 공군기지에서 전투기가 출격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러시아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한 사실도 전했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자신의 안전 보장을 요구했으며 러시아 영토 내에서의 안전을 약속했다”고 말했다.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발언도 나왔다. 그는 “나 야누코비치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밝힌다”며 “나는 여전히 내가 우크라이나 국민이 자유 선거로 선출한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믿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또 다른 러시아 언론은 “야누코비치가 모스크바 외곽의 크렘린 휴양소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의 크림자치공화국 수도인 심페로폴에선 총기로 무장한 친러시아 세력이 자치정부 청사와 의회를 점거했다. 이들은 청사에 러시아 국기를 게양하고 ‘크림은 러시아’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아르센 아바코프 우크라이나 내무장관 대행은 군과 경찰에 비상 사태를 발령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들이 취해졌다”며 “도시 한복판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 지역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대통령 권한대행은 크림반도에 주둔하는 러시아 병력이 흑해함대 기지에 머물 것을 요구했다. 그는 “기지를 벗어날 경우 침략으로 간주하겠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26일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서부의 군 부대에서 비상 훈련을 실시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7월 푸틴 대통령의 지시로 동부 군관부에서 유사한 훈련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통상적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주권을 침해하는 군사적 개입은 중대한 실수”라며 “그런 결정이 내려진다면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러시아에 경고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도 이날부터 이틀간 브뤼셀에서 국방장관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크림반도 지역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했다. 실제 6년 전 러시아-조지아 전쟁은 위기감을 키우는 원인이다. 조지아의 오세티야 등에서 일어난 분리 독립 움직임을 조지아 당국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숨졌다. 러시아는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사 개입했다. 결국 수백 명이 숨지고 남오세티야 등 두 곳이 조지아로부터 독립했다. 한편 ‘바티키프시나(조국당)’ 대표인 아르세니 야체뉵(39)을 총리로 하는 내각이 27일 출범했다. 야체뉵은 변호사 출신으로 앞선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 정권에서 경제장관, 외교장관, 의회 의장 등을 역임한 친서방 인물이다.

 ◆우크라이나 디폴트 위기=서방과 러시아의 치킨게임은 우크라이나발 경제위기의 도화선도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몰려 있어서다. 우크라이나가 3월부터 1년 동안 갚아야 할 빚이 모두 136억 달러(약 14조5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돈줄은 막혀 있다. 러시아 정부뿐 아니라 시중은행까지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미국·EU가 지원키로 했으나 시기까지 결정된 건 아니다.

 블룸버그 통신은 “당장 돈이 지원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가 다음 주 디폴트를 선언할 수 있다”고 26일 전했다. 금융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크라이나 돈인 흐리브냐 값은 26일까지 사흘 새 13% 정도 폭락했다. 달러당 10흐리브냐 선으로 1991년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최저 수준이다. 외환위기 상황이나 다름없다. 금융전문지인 유로머니는 “우크라이나 디폴트는 동유럽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여파는 러시아를 강타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국채를 가장 많이 가진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도 26일 달러당 36루블 선까지 추락했다.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한 1998년보다도 낮다.

 영국 BBC방송은 “서방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영향권 내에 두기 위해 정치적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파국 순간 양쪽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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