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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가 무능·오만이면 11%는 뭘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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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어떤 축구 라이벌전이 5:0으로 끝났다. 진 팀이 슈팅을 한 번도 못했을 정도로 일방적 게임이었다. 그런데 경기 뒤에 진 팀 감독이 이긴 팀에 대해 “골 결정력이 엉망이고 수비는 자동문 수준”이라고 혹평했다면 팬들이 뭐라고 할까.

 요즘 민주당이 이와 비슷하다.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아 민주당이 매긴 박근혜 정부의 성적표는 F학점이다. 퇴행적 공안 통치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렸고, 지역편중 인사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으며, 안하무인식 불통 정치로 민의를 압살했을 뿐한 아니라 재벌만 편들고 복지공약을 후퇴시켜 민생을 파탄냈다는 게 민주당의 진단이다.

 그런데 21~22일 실시한 중앙일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62.7%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새누리당(43.0%), 새정치연합(13.9%)에 이어 11.1%에 머물렀다. 이런 ‘무능·오만·독선·불통·반민주·민생파탄’ 정권의 지지율이 62.7%인데, 민주당의 지지율이 11.1%라면 민주당은 앞에다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건지 누가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민주당의 현실 인식에 비해 현 정권의 지지율이 턱없이 높은 것은 상당 부분 민주당 자신 때문이다. 민주당에 국정을 맡길 만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중도층을 끌어들일 생각은 하지 않고 밤낮으로 소수 강경파에 휘둘려 ‘그들만의 투쟁’이나 벌이니 지지 기반이 어떻게 넓어지겠나.

 사실 민주당에도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꽤 있다. 그래서 올 초 김한길 대표가 ‘햇볕정책 2.0’ 등을 내걸며 중도노선 강화에 나설 때만 해도 뭔가 좀 달라지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전 김용판 무죄 판결이 나오자 곧바로 옛날 습관이 도졌다. 판결은 판사가 내린 건데 민주당이 엉뚱하게 법무부 장관 해임안을 낸 것도 웃기거니와, 만약 2심에서 또 무죄가 내려지면 그땐 총리 해임안이라도 낼 건지 궁금하다. 아무 실효도 없고 감동도 못 주는 이런 단세포적인 정치공세는 국민들의 눈엔 그냥 화풀이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특히 본안과 관련없는 별건을 볼모로 삼아 국회를 마비시키는 전술은 국민들이 제일 짜증내는 행태인데도 도무지 고칠 줄 모른다. 가령 이번에도 민주당은 안홍철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2012년 대선 때 야당 비방 트윗을 날렸다는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면서 기획재정위의 조세특례제한법 처리를 중단시켰다. 이 조특법은 우리금융 계열 지방은행의 매각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민주당도 이미 합의한 내용이다. 안 사장 문제와 조특법은 아무 연관이 없는데도 조특법이 인질로 묶인 것이다.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우리금융 민영화를 통한 공적자금 회수에 차질이 발생한다. 이런 황당한 사태를 바라보는 금융권 인사들이 민주당을 어떻게 평가할까. 박근혜 정부 1년을 맞은 민주당이 깨달아야 할 진정한 교훈은 정권이 아무리 실책을 저질러도 야당이 예비 집권당다운 성숙한 면모를 못 갖춘다면 반사이득을 챙길 수 없다는 점이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