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예 진흥 평가 보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위대한 문명·사회가 갑작스럽게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비유이다. 우리의 민족 문화 예술을 크게 진전시키고자하는 의욕이나 시책도 실상 그러한 의미 영역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예 중흥 5개년 계획에 따른 사업 추진도 그야말로 긴 역사적 안목에 터잡은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발표된 75년도 평가 교수단의 문화 예술 분야 「평가 보고서」의 지적은 경청할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물론 이들의 지적은 너무도 광범한 영역에 걸친 여러 가지 문제를 말하고 있어 경우에 따라선 반드시 받아 들여져야 한다고 고집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민족 문화의 진전」에 관련되는 것이고 「국민의 혈세」에 의해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국가적 손실을 줄이고 최선의 성과를 기해야 한다는 뚜렷한 입장에서 이 평가 보고협에 관련된 몇 가지 소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문화 예술의 분야에 있어서 가장 선행되어야할 것은 민족 전체 누구나가 다함께 가져야 할 민족 문화에 대한 긍지와 이 문화의 계승자로서의 정통 이념의 확립 문제라 할 수 있다. 객관적인 여건이 이를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면도 있겠지만, 사업 추진의 명분이나 이념은 언제나 분명히 그리고 널리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형식주의나 졸속주의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가령 「민족 박물관」의 건립 계획만 하더라도 그 자체를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멀지 않아 개관될 민속박물관 등의 허술한 점을 보완하고 그 하나하나 나마 제대로 지원하지도 못하면서 새로운 계획을 성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그 동기의 순수성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우리 나라 전체 박물관에 대한 종합적 검토나 기존 박물관들과의 관계를 비롯해 기구·내용·성격·인원 등의 연구를 거쳐 건설시기가 재검토돼야 하겠다는 것이다.
또 문화재의 발굴, 보존, 보수, 정화 등 종래의 문제점들이 개선되었다는 증거도 없이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과욕도 우려를 낳게 하는 것이다. 경주 황남동 155호 고분과 98호 고분의 북분 발굴을 둘러싸고 이미 제기되었던 반대 의견들이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문화재 보존의 보다 합리적 처방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예술 활동의 자율성 보장의 문제다.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의 활동은 사업 계획의 기본 방향을 설정함에 있어서는 국가적 차원의 협의가 물론 필요하겠지만, 세부적인 운용의 면에까지 관이 주도한다는 인상은 불식되어야겠다. 문화 예술의 참다운 진흥은 이들 기구들의 독자성을 살리는데서만 바랄 수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도 「어용적」 문예 활동이라는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근본을 그르칠 위험이 있다.
문예 진흥원 등 무릇 모든 문화 단체들은 자기들의 자율성 확립을 그 존립의 최고 이념으로 삼아야 하겠으며, 아울러 그 기금의 공정한 운용에도 신경을 써야겠다. 몇개 잡지에 지급되는 원고료 보조금이나 작가 기금의 운용에 있어서조차 잡음을 일으켜서는 안될 것이다.
평가 보고서가 『74년도의 문화 예술 분야의 정부 시책 및 실천성과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했다』고 지적한 것은 반가운 일이기는 하나 위에서 열거한 안목에서의 몇 가지 기본적 또는 기술적인 수정 노력은 우리 사회에 유행 병처럼 퍼진 「시행 착오」의 질환을 없애기 위해서도 반드시 과감하게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