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는 문학체험 위해 외국여행 즐겼다|「본」대학「베다·알레만」내한 강연『「유럽」인으로서의「릴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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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독「본」대학의 문학교수인「베다·알레만」박사가 주한 독일문화원 초청으로 15일 내한, 17일부터 24일까지 서울·대구 등지에서 문학강연을 가진다. 다음은 그의 강연 중 『「유럽」인으로서의「릴케」라는 제목의 강연을 양혜숙 교수(이대·독문학)가 초 역한 것이다. 편집자 주>
「릴케」는 우연을 싫어하는 시인이었다. 그는 분명한 것을 좋아했다. 옛 도시 동상·목등 이나 걸인 또는 말 같은 것들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었다. 문화권의 의미 역시 「릴케」의 시작에 같은 작용을 했으며 그 까닭에 그의 시는 그토록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러시아」대 평야의 추억이 밤의 초원을 달리는 백마의 모습에서 되살아난다.「사르트르」의 사원이나「카르나크」에 있는「이집트」의「렐리에프」도 시인인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는 어두울 줄 모르는 북구의 밤의 우 울을 사랑했으며, 또한 뜨거운 북「아프리카」의 황야에 깃 든 고독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기도 했다. 가파른「스페인」의 산천에서 무아경의 황홀을 깊숙이 되새겼고「스위스」의「발리스」지방의 들길과 포도밭을 바라보며 바위로 둘러싸인 외진「두이노」성에서 그의「엘레지」에 열중했다.
그러나「릴케」의 시인으로서의 특징을 우리는 그의 또 다른 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릴케」는 자기의 경험이 시적 형태로 산출되기 전까지는 끝내 그의 내면세계에서 표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릴케」가 체험한「유럽」을 감각적이고 구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의의 있는 일이다. 「릴케」에게 있어「유럽」이란 추상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지리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몸소 체험한 참 인식의 결산이다. 어린 시절의「릴케」는「덴마크」의 작가「옌스·페테르·야콥센」에게서「릴케」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발견했으며「야콥센」못지 않게 영향을 준 작가로 우리는「매터링크」를 들 수 있다.「파리」의 생활에서 맺은「페르해렌」과의 우정, 문학적으로 더욱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은「앙드래·지드」, 그런가 하면「마르셀·프루스트」를 존경하기 시작한 최초의 사람이「릴케」이기도 하다. 그의『말테의 수기』에서 우리는「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과「키에르케고르」의 생각을 똑같이 읽을 수 있다. 번역 인으로「릴케」는 그의 마음에 와 닿는 작품이면 언어를 가리지 않고「유럽」전역에서 찾아냈다. 이러한「릴케」의 광범위한 편력은 그의 문학적 체험을「유럽」전역에 걸친 깊이와 넓이에서 찾고자 하는 그의 자연스런 태도에서였다.
이러한 그의 개방적 자세를 우리는「프라하」에서 태어난 그의 출생과 교육에서 설명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시「유럽」의 상류층에 흐르고 있는 교육적 분위기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귀족이나 상류층 시민출신 예술 애호가들의 대접은「릴케」의 외형적 생존에만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5년 연상으로「러시아」출신 장군의 딸이며「니체」의 숭앙의 대상이었고「프로이트」의 애 제자인「르·앙드레·살로메」와의 끊임없는 이해와 갈등은 그룰 성숙시키는 큰 요인이 되었다. 또한「세잔」의 발견은 그를「여행하는 인간」상에서「꾸밈없이 일하는 인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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