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포츠 단체, 일부 세력이 장악 … 이상화·박태환도 연맹과 갈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26일 서울 서강대에서 문화연대와 스포츠문화연구소가 주최한 ‘소치 겨울올림픽으로 드러난 대한민국 체육계의 문제점’ 토론회가 열렸다.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 현상의 본질과 김연아(24)가 우리에게 남긴 것’ 등의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펼쳐졌다.

 러시아로 귀화해 소치 올림픽 3관왕에 오른 안현수에게 열광하고, 대한빙상연맹을 비난하는 현상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대표 발제를 한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파벌 문제와 왕따 문제, 폭행 문제는 지난 일이다. 안현수가 귀화한 본질적 이유는 성장하는 후배들과 경쟁이 버거웠고, 러시아의 파격적인 조건이 있었으며, 한국의 억압적인 훈련 분위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로 훈련하다 선수 생명이 끊길 부상을 당했는데 연맹은 무관심했고, 한국 특유의 강압적 훈련 문화에 거부감이 작용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달영 변호사는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 단체는 시스템이 아닌 일부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안현수는 현 빙상연맹 집행부가 있는 한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겠다는 피해의식이 있어 떠난 거다. 박태환(25)도 대한수영연맹과 갈등을 겪었고,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25)도 대학 졸업 후 연맹에서 가라는 팀을 마다하고 서울시청에 간 거다”라고 주장했다. 이동연 문화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빙상연맹만 터졌지만 체육회 산하 단체에도 문제점이 비일비재하다. 다수의 정치인과 경제인이 체육 단체 수장이다. 좋은 수장도 있지만 정치적·경제적 커넥션이 악용되면 파벌 문제가 사라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연아가 소트니코바(18·러시아)에게 금메달을 뺏겼다고 분노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냉철한 시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개진됐다. 이준호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는 “국내 피겨 스케이팅 전문가들이 김연아가 기술점수에서 소트니코바에게 5점 지고 들어갔다고 하더라.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김동성(34)이 안톤 오노(32·미국)와 접촉 후 실격 당했을 때 나는 프랑스 대표팀 감독으로 현장에 있었다. 홈 어드밴티지를 고려하면 실격을 줄 수도 있다고 봤다. 방송 해설위원들한테 실격 아니냐고 물으니 ‘(그런 말 하면) 국민들한테 뭇매 맞는다’고 손사래 치더라.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축구인 김강남씨는 “신문선씨는 2006년 독일 월드컵 한국-스위스전 오프사이드 판정에 대해 소신발언을 했다가 거의 매장을 당했다. 홈에서 열려 유리한 판정을 받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은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동연 위원장은 “해설위원과 언론은 과열된 애국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고 국민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4년 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중지가 모아졌다. 정희준 교수는 “대표선수 선발은 상급기관이나 외부단체 감시를 받도록 해야 한다. 공정한 시스템으로 뽑힌 임원이나 지도자가 잘못을 범하면 삼진 아웃이 아닌 원스트라이크 아웃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연 위원장은 “김연아와 이규혁(36)의 환한 표정이 해답이다. 올림픽에 여섯 번 출전한 이규혁은 비록 메달은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열광했다. 김연아는 심판 판정에 승복하고 은메달을 따고도 미소를 지었다”며 “국민들은 금메달을 못 따도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는 ‘경쟁보다는 축제, 금메달보다는 잔치’란 슬로건을 만드는 게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박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