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협의체』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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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강대국들 사이의 대립과 긴장을 가능한 한계 내에 국한시킴으로써 이른바 다극적 균형구조에 기초한 세계의 안정질서를 모색하던「키신저」의 대국주의 적 외교는 최근 도처에서 많은 장애에 부닥치고 있는 듯하다.
이와 대를 같이해서 74년 5월에 있었던「말레이시아」와 중공의 국교수립, 대양주 국가들의 적극적인「아시아」-태평양 지역외교에의 진출, 인도 아 대륙으로의 급작스런 핵 확산 및 동북아에 있어서의 소-중공 대립의 심화 등으로 인해서 국제정치의 초점은「유럽」으로부터 인도 아 대륙을 거쳐 다시금 동북아와 태평양지역으로 이동해왔다.
이와 같은 새로운 국제환경의 출현은 중 소국들의 머리를 넘어 거래되던「키신저」의 대국형 외교기술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전인류적 난제들을 연거푸 노출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원·「에너지」·인구·식량·해양 권 등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에 관련된 과제들이「키신저」외교의「위기관리」방식을 뛰어 넘어 새로운 국제위기의 일의 적인 요인으로「클로즈업」되었다는 점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정세변동의 상사 피해자격인「아시아」-태평양지역의 중소국가들로서는 불가피하게 대국주의 외교의 부담요소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상호협조를 목표로 한 신 지역주의 외교를 도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아시아」제국 및「네팔」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 나라 김 외무의『「아시아」협의체』구상도 이런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거시적으로 볼 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중국 고전문명의 세계가 일단 붕괴된 이후 지금까지 안정된 질서가 지속적으로 정착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윌슨」유의「워싱턴」체제나 전전 일본의「공영 권」또는 전후의 냉전체제들은 모두가 이 지역에 있어서의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과정상의 한 개 구문에 불과했을 뿐이다.
이제 미·소·일·중공의 유동적인「아시아」전략의 상충 속에서 이 지역국가들은 역내와 역외에 있어 다각적인 자구 적 시행착오들을 시급히 정리하여 정치·외교·경제·문화의 제 영역에 걸쳐서 새로운「아시아」사의 정통성을 세계에 부각시킬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하겠다.
이 노력의 집중과정에서도 물론 개발과 안보로 집약되는 구체적 목표의 달성방식에 있어 허다한 상이점과 불일치가 가로놓여 있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북괴와 중공과 소련은 이미 제각기 이 발판을 이용하여 아 지역에 갖가지 외교적·군사적·경제적 침투를 기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일-소「시베리아」개발과 극동의 미·일 군사동맹체제에 대한 소-중공의 이기대립이 가중되어 문자 그대로 유동적인 혼란이 교차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아시아」사의 정통성확립과 자활 적인 경제성장 및 항구적인 안정질서를 지향하는 이 지역국가들은 더 이상 공산세력의 교란공작이나 대국중심주의의 일방적 독주에 좌 고우면 함이 없이 자구 적 협조체제의 모색을 위해 보다 효과적인 협의를 벌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실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분단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우리가 제시한 평화구상이 이 지역국가들에 의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도록 한국의「아시아」사적 정통성을 대내외적으로 확인시킬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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