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생활수준의 저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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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도시 근로자의 생활수준이 더욱 떨어지고 있다. 경제기획원이 조사, 발표한 74년 4·4분기의 전 도시 근로자 가계수지에 따르면 가구당 월 평균소득은 전년 동기에 비해 25·1%가 증가한 6만8백20원에 달하였지만, 소비지출도 또한 크게 늘어 결국 가계비 가운데서 음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인 「엥겔」계수는 73년4·4분기의 44·2%에서 3·5%가 더 높은 47·7%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엥겔」계수의 이와같은 증대현상은 실질 생활수준이 매우 옹색하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생계비 가운데서 음식비에 대한 지출의 비율을 낮추게 되며, 그 반면 문화비나 오락비에 대한 지출의 비율이 늘어나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도 전 도시 근로자의 가계예산은 지난한 해 동안 전기한 바와 같이 「엥겔」계수를 더욱 증대시킴으로써 생활조건의 악화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높은 봉급 생활자들의 「엥겔」계수를 더욱 증대시킴으로써 한국국민의 생활이 한층 궁색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엥겔」계수가 40%정도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통념상 최저 생활 밖에 영위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인데, 이제 생계비의 절반에 가까운 48%를 생존을 위한 음식비에 돌리고 있으므로 이는 매우 심각한 사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근로자의 이와같은 생활조건 악화는 주로 지난해의 급격한 물가상승과 이에 발 맞추지 못하는 임금조정의 지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74년 4·4분기의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이 전년 동기보다 25·1% 밖에 늘지 않았는데 지난한해 동안 물가 상승률은 무려 46%에 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결국 명목소득이 증대하였지만, 실질소득은 도리어 감소하였던 것이고 이에 따라 절대적으로 줄이기 곤란한 음식비 지출은 그 비율을 높이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와같은 물가상승률과 임금 상승률간의 괴리현상은 물가 상승률이 지나치게 클 때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물가는 급속히, 그리고 끊임없이 오르고 있는데도 기업의 임금인상 조정은 물가상승과 같이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업은 오히려 「인플레」이득을 보고, 근로자는 손해를 본다는 말을 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도 「인플레」는 소비자의 으뜸가는 공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도시 근로자의 실질임금 저하에 대해서는 기업의 임금인상 조정방식이 잘못 운용돼 왔음을 또한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경우, 기업들은 지난해와 같은 혹독한 「인플레」기에 있어서도 종업원의 봉급인상을 연간 한번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봉급인상은 늦출 수 있는 데까지 늦추었다가 한꺼번에 단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그동안 종업원의 실질소득은 저하 일로를 걷지 않을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기업의 봉급인상방식을 개편해야 할 필요성을 통감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리적으로는 임금조정에 있어서의 물가 「슬라이드」제를 하루 빨리 도입하는 것만이 그 유일한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 물가 「슬라이드」제가 사무·기술상 복잡하다면 임금인상의 조정을 한 해에 적어도 3, 4회 이상 꾀하는 것도 차선의 방법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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